아기 낳던 날 <3>
올 것이 왔다. 분만 촉진 주사를 맞은 지 약 2시간이 지나자,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됐다. 월경통 느낌처럼 싸하게 아픈가, 싶다가 통증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통증은 한번 시작되면 몇 초에서 몇 분까지 지속됐다. 남편과 멀쩡히 얘기를 나누다가도, 진통이 오면 뭔가를 움켜쥐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앓는 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도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굉장히 묵직한 통증이 내 몸을 압도했다. 뭐라고 비유해야할지 모르겠다. 누구는 배 위로 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라던데.. 배 위로 차가 지나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 느낌인 건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통증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조금 아프다가, 괜찮다가를 반복했다. 유튜브에서 에버랜드 판다가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진통 와중에 그 판다도 이런 기분이었겠거니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는 동물들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그리고 인류가 이 동물성을 이성 뒤에 은폐해버렸다는 사실이 계속 불공정하게 느껴졌다.
통증이 느껴지는 간격이 짧아질수록 분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고통은 더욱 거세어진다. 하지만 산모가 얼마나 아픈지와 관계 없이 의사마다 무통주사를 놓는 기준이 있는 듯했다. 보통은 자궁 문이 4cm 정도 열리면 놓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이 시간이 길수록 산모들은 더 힘들어진다. 아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3-4시간쯤 지났을 때, 담당의는 자궁문이 2.5cm정도 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진행되고 있다고 격려하며, 많이 아프면 무통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더 아파야 맞을 수 있는 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맞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나는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원래 엄살이 별로 없고 통증을 잘 참는 편이다. 그런데 그쯤에는 너무 아파서, 그만 참기로 했다.
주사를 놓는 과정은 내 등 뒤에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간호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에게 벽을 보고 누운 채 등을 최대한 굽히라고 했다. 소위 무통주사라는 건 척추마취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제거하기 때문에 무통주사라고 불릴 뿐. 무통주사의 약효가 듣지 않는 산모들도 있다. 나는 등을 굽힌 채로 내 뒤로 오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손길을 느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마취과 의사로 추정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자기 소개를 한 것 같고, 조금 아플거라는 둥 이제 주사를 놓을 거라는 둥 하는 말을 했고, 다 됐다고 했고, 스르륵 다시 사라졌다. 나중에 조리원에 있던 마사지사가 내 주사 자국을 보고 등에 난 빵구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주사자국도, 그 주사자국을 만든 사람도 보지 못 했다. 그.. 산부인과 사람들이 다같이 짜고 친 플라시보는 아니었겠지…?
얼굴도 못 본 그 남자가 다녀간 뒤 과연 통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견딜만했다. 배가 아파오는 것 같기 한데 이전처럼 너무 아프진 않았다.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고,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좀 평온해졌다. 그렇게 천국의 시간을 한 한 시간 정도 보냈나보다. 네 시부터는 진통 강도가 세졌는지, 마취제를 맞아서 그나마 견딜만한 고통이라고 생각되는 통증이 올라왔다.
그리고 약발이 떨어질 때쯤, 분만실로 옮겨졌다. 네 시 반에서 다섯시 사이쯤이었을 것 같다. 이제 진짜 올 것이 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통증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어서, 긴장을 할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