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는 법

기운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보자

by 희움

강릉이다. 금요일에 결심을 하고, 일요일 아침으로 버스를 끊어 내려왔다. 힘을 빼기 위해서, 비 오기 전 해를 즐길 겸.


통보를 받고 몽골 여행 직전 일주일과 직후 이주일, 하루하루를 꽉 채워 버티고 살아냈다. 광기였던 것 같다. 광기로 7장의 포트폴리오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시험을 치고 업계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살았다. 지난 주 예정되어 있던 세 번째 면접을 목요일에 치르고 드디어 친구를 만나기 시작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같이 팟캐스트 준비하던 친구를 만났다. 비슷한 광기를 공유하는 친구라서, 본인의 경험도 그리고 지인의 경험도 공유해주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나름 어떻게든 다 잘 되더라. 어디선가 또 열심히 살아나가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위로가 된다. 금요일에는 같이 몽골도 간 회사 언니를 만났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너는 걱정되지 않는다고. 넌 잘하니까. 일도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다가 사회생활도 잘하니까 기회는 당연히 잡을 수 있을 거에요.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고,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언니는 내게 힘을 빼 보자,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언니의 경험들과 함께. 기회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온다는 상투적인 말이 있지만, 사실 그건 상투적인 게 아니라 진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방향에서는 무엇이 기회일지 예측이 되어도, 생각지 못한 곳에 있는 기회는 생각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예측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 내내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며 모래알이 손아귀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꽉 움켜쥐어서 조금 흐르는 알들이 더 잘 보이는 것 뿐이고 손가락을 좀더 펴고 바람이 적당히 통할 곳을 마련한다면 그것 또한 모래를 잘 쥐는 법일 수도 있겠다. 인생은 노력보다는 기운이라는 게 더 크게 작용하는 때도 있으니.


바깥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내가 굉장히 크게 느끼고 있었구나, 도 이번 일로 더 잘 알게 된 사실이다. 첫 직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은 내 다음 직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사실 알고 있다. 그때로 돌아갔더라도 나는 어쨌건 그때건 그 다음이건 이직을 했을 것이다. 내게 경험과 성취와 실패는 필연이었을 것이다. 뿌듯하고 아프고 불안정하겠지만 이는 도전하는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특권일 수도 있다. 겪을 거면 어릴 때 하자, 라는 그때의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괴롭하는 그런 생각과 후회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나를 계속 평가하려고 하고, 보란 듯이 내 성공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자아과시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타의든 자의든 회사 이름을 떼고 ‘나’라는 사람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본격적으로 세팅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많은 직장인 선배들이 40~50대의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하는데, 비교적 그런 고민 돌파를 20년 이르게 할 수 있는 상황이지 않을까? 물론 엄청난 스트레스가 따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여러 선택을 하도록 몰아넣어지는 순간들이 있겠지만, ‘나’와 지금의 내가 필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한다면 생각보다 심플할 수도 있다. 나 스스로를 내가 설득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건 문제가 아니니까.


강릉에서 묵은 필그림 게스트하우스에서 비오는 아침 창밖을 바라봤다. 나와 같은 순례자들이 붙여 둔 포스트잇 글들에 눈이 많이 갔다. 나처럼 힘든 때 쉬러 내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묵혀 둔 마음을 꾹꾹 눌러 적어서 붙여 두었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포스트잇 글 옆에 붙여 두고,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대학 때부터 성장을 갈망하던 저는 그만큼 겁없이 부딪히고, 뛰어들고, 달려가다 직장생활 4년 반이 지난 지금, 회사와 사람에게 오는 배신으로 잠시 멍하게 있습니다.

탓할 곳도 마땅치 않은 이 상황에서 그 화살을 나에게 꽂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지만 그게 너무 어렵네요.

우선 나에게 친절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빨리 끝났으면 하지만… 이제는 예상대로 안 되는 것 투성이니, 예상치 못한 기쁨에 감사하며 살아볼게요.”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은 앞으로의 일이 다 잘되려니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아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자유 속에서 평안하기를, 그만큼 구속 속에서도 편안하기를.” -누군가의 메모로부터


마음이 단단해졌다 말랑말랑해졌다 한다. 마음근육이 더 길러지는 과정임을 알고 있지만 이런 내가 매번 낯선 건 매한가지다. 커리어는 결과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만족이다. 위기가 기회를 만드는 거고, 나는 나를 수식어 없이 믿는다. 기운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고,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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