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어느 날, 막내 아가씨네 부부가 우리가 사는 지역에 놀러 왔었다. 밥을 먹다가 남편도 함께 수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충동적으로 다 같이 집 앞 수영장을 가게 되었다. 서방님(이 호칭은 참으로 입에 붙지 않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어 본 적이 없다)은 워낙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아가씨는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을 배운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함께 발리여행을 다녀와서 나의 물공포증을 바로 옆에서 봤던 둘은 나의 변화에 아주 놀랐다. 신기해하는 모습에 괜스레 더 물속에서 헤엄쳐봤다. 나 대단하죠?
토요일의 점심시간 즈음엔 수영장에 사람이 정말 없다. 레인 하나를 넷이서 쓰며 실컷 놀던 와중 아가씨가 남편 수영하는 걸 보더니, 수영 배우면 내가 더 잘하겠네! 하는 얘기를 꺼냈고 승부욕에 불타오른 두 남매는 다가오는 구정에 수영 대결을 하기로 하고야 말았다. 구정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 남짓, 대결 종목은 자유형 25미터 완주.
그렇게 대결 약속을 하고, 번번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단체 수영 강습 신청에 떨어지던 아가씨는 개인 강습을 끊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도 질 세라 수영에 열을 올렸다. 이 당시 남편은 초급반 등록했던 시기여서 한 달 만에 반드시 중급반으로 올라가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저녁의 단톡방에서는 애플 워치 기록을 공유하며 서로를 견제하느라 바빴다. 수영 대회 개최 소식을 들은 아주버님이 갑자기 참전을 선언했다. 아주버님도 초급반 정도까지만 배웠었던 터라 셋이 실력은 비슷비슷했다. 일이 점점 커졌다.
남편은 초급반 시험을 통과해서 중급반 강습을 시작하며 배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가씨도 배영을 배웠다. 가내 수영대회를 개최한다는 말을 들은 아가씨의 수영 선생님은 반드시 이기게 해 주겠다며(!) 이전보다 수업 강도를 높게 진행한다고 했다. 배영을 배운 둘은 배영 25미터도 대결 종목에 추가했다. 자유형은 아무래도 남자가 힘이 있으니 남편이 유리할 테고, 배영은 여자들이 더 잘 뜨니 아가씨가 유리했다. 대결에 진심인 이 남매들을 보고 있자니 피는 못 속인다 싶었다. 주말에도 연습에 열심인 남편의 배영자세를 보기 위해 뒤를 쫓아가며 수영했다. 허허, 배영은 안 되겠는데?
시간이 흘러 명절이 되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집 앞 수영장은 개관을 하지 않아, 다른 동네의 사설 수영장을 찾았다. 명절 전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1인 1 레인을 썼다. 이즈음 난 갈비뼈가 아파서 물속에서 발차기만 가능한 정도였기에 같이 워밍업 몸풀기를 할 수 없었다. 나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뒤따라 가며 돌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여 아쉽기만 했다. 워밍업을 마친 셋은 각각 한 레인씩 차지하고 섰다. 서방님의 신호로 출발한 자유형은 근소한 차이로 남편이 1위, 아주버님이 2위, 수경에 물이 들어와 앞이 보이지 않아 도중에 기둥에 어깨를 박고 일어선 아가씨가 3위였다. 다들 미친 듯이 하길래 멀뚱멀뚱 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진심이네, 이 친구들. 이어진 배영 대결은 아주버님은 제대로 배운 적 없었기에 남편과 아가씨 둘이 진행했고, 남편이 필사적으로 했지만 아가씨가 여유롭게 먼저 들어오며 1대 1 동점이 되었다.
확실히 목표가 있으니 수영이 많이 늘었다. 다음은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면 10만 원 한도에서 수영복을 사주기로 했다. 남편과 아가씨는 자유형 50미터를 하면 힘들어해서, 안 쉬고 150미터까지. 난 현재 100미터까지가 한계여서 3배인 300미터까지, 서방님은 50미터를 40초 안에 들어오기가 목표다. 동기부여도 되고 체력도 키우고, 다 같이 함께 공유하면서 으쌰으쌰 할 수 있으니 외롭지도 않다.
나의 시작으로 시댁에도 친정에도 수영 붐이 일었다. 현재까지도 모두들 수영에 빠져있다. 단톡방의 대부분이 수영 이야기다. 처음 시작한 나는 현재 갈비뼈 부상으로 수영을 못하고 있어서 속상할 따름이다. 나도 내 애플워치 기록 공유하고 싶은데 언제 낫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