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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본느의 심술

작전명 폼페이 최후의 날

by 은예진

민영식은 한 달 뒤에 양아버지인 혼마치 경무국장의 생일 축하연이 있을 것이란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유성준은 드디어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총독은 혼마치를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일 축하연에 잠시라도 얼굴을 비칠 것이라고 했다.


살롱에서는 홍정순이 연주하는 녹턴의 선율이 애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다들 눈을 감고 몸을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채 연주에 몰입해 있다. 저 우아한 연주를 하는 홍정순의 내면이 얼마나 뜨겁게 들끓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원래 조선인은 절대 총독부 관료들의 생일 축하연에 올 수 없는 법이거든. 그런데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있어요. 만약에 허락받는다면 자네 당연히 오는 거지?”


민영식이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싱글거린다.


“우리 아버지는 사실 자네가 내지에서 관리 대상이었다고 신경 쓰여하시거든. 그런데 이건 말이 안 되지. 어떻게 대일 은행 회장 아들이 불령선인이 되겠어. 불령선인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조선에서 활보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백번을 생각해도 자네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 비렁뱅이 같은 불만세력들이 하는 짓에 동참했다는 의심을 사는 것은 진짜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네.”


“그게 말이야. 관동 대지진 이후로 내지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감정이 아주 최악이었거든. 그래서 나도 오해를 샀지. 특히 겐지라는 경찰이 내게 돈을 바랐는데 내가 무시했어. 그때부터 겐지는 나를 잡아넣을 궁리만 하며 쫓아다녔거든. 조선 땅이었다면 절대 그런 의심 살 일이 없었을 텐데.”


홍정순의 연주가 끝났다. 민영식이 홍 군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훌륭하다며 감탄한다. 유성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 자네는 아버님 생신 선물은 준비했나?”

“황금 열쇠를 하나 만들기는 했는데 무언가 성의가 없어 보여서 고민이라네.”

“내가 초대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나라면 좀 더······.”


이본느가 갑자기 그들에게 다가와 유성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인사를 한다. 등이 깊숙하게 파인 검은색 실크 드레스는 물결치듯 움직이며 이본느의 몸매를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유성준과 의열단 때문에 말다툼을 한 이후로 유성준이 난처해할 만한 행동만 골라서 하고 있다.


불쑥불쑥 유성준과 굉장히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귓속말을 하면서 어깨나 팔에 손을 얹고는 했다. 유성준은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유성준은 오해를 받는 것이 신경 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본이의 심술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영식이 입을 벌리고 본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침을 바닥에 떨어트릴 것만 같았다. 유성준은 그런 민영식의 입에 주먹을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말이야, 아버지 생일 축하연에 이본느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없을까?”

“뭐라고? 자네 부인은 어쩌고?”


“부끄럽게 그런 여자를 어떻게 축하연에 데리고 가나? 조선철도 호텔에서 열리는 축하연은 그런 여편네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파트너로 이본느 정도는 되는 여자를 데려가야 내 얼굴이 살지. 안 그런가?”


“그런데 이본느 일을 내가 어떻게 도와주나?”


“요즘 보니까 이본느가 자네한테 무척 호의적으로 보여. 지금도 봐. 나한테는 인색한 그녀가 자네 어깨에 손 올리는 거 보라고.”


“그거야······. 내가 자주 오니까 이본느가······.”


“내가 더 자주 온다네. 이 사람아.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생일 축하연에 자네도 초대받았으니 같이 가자고 이야기 좀 해보라 이거지.”


유성준은 디데이가 잡혔다고 느끼는 순간 이본느가 끼어들자 불안감에 입이 말랐다. 물로 입을 축여도 마실 때뿐이다. 입술까지 말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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