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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기가 생기다

살롱 드 경성

by 은예진

장연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유성준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술집 밖으로 나가자 장연수가 담벼락에 소변을 보고 돌아서서 바지를 올리고 있었다. 장연수는 유성준이 절대 그냥 가면 안 된다며 붙들고 늘어졌다.

“자네 말이야, 이천에서 이본이라는 여자에 대해 물어봤었지?”


유성준은 장연수의 입에서 독한 술 냄새와 함께 이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놀라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자네 그때 모른다지 않았나?”

“에헤, 모른다고는 안 했지! 그냥 좀 익숙하다고 했지.”

“그런데?”


술에 잔뜩 취한 장연수는 트림을 거칠게 하더니 몸의 균형을 잃었다. 휘청거리는 장연수의 몸을 유성준이 받치고 섰다.


“그게 말이야, 나도 그 계집 이름을 몰랐는데 우리 마누라더라고. 그때 내가 쫓아낸 우리 마누라야! 으히히, 우히히.”


“뭐라고?”


“아, 내가 첫날밤에 소박 놓고 윤미령이가 재무국장 딸이라고 뻥 쳐서 쫓아낸 여편네 이름이 본이더라고. 꺼억.”


유성준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장연수를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장연수가 아이고 아파라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지금 왜 나를 찾아온 건가?”


“자네가 이본이라는 이름을 물었잖아. 윤미령이가 쫓겨나고 우리 부모님이 이본이를 다시 데려오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잖아. 에이씨! 나도 그 계집 진짜 찾기 싫은데 말이야.”


“그럼 찾지 말면 되겠네.”


유성준이 장연수를 받치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이본이 그렇게 서둘러 성빈관을 떠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길은 눈이 얼어붙어 빙판이었다. 그 위에 장연수가 방금 소변을 보는 바람에 바닥이 질척거렸다.


균형을 잃은 장연수가 어, 어, 어 소리를 연달아 지르다 고꾸라졌다. 결국 제 오줌 위에 얼굴을 처박고 넘어졌다. 유성준은 그 뒤통수를 밟아서 오줌 위에 아주 묻어 버리고 싶어서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다시 한번만 눈앞에 얼쩡거리면 본이 몫까지 요절을 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장연수는 길바닥에 쓸려서 벌겋게 피가 맺힌 뺨을 어루만지며 연거푸 세 대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유성준이 왜 그렇게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담배꽁초를 집어던지는 순간 번뜩 여관에서 유성준이 기다리고 있다는 편지를 전해주던 최 집사의 말이 떠올랐다. 봉투 글씨를 본 최 집사가 아씨가 편지를 보냈느냐고 물었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었기에 최 집사의 착각이려니 했다.


이 연놈들 사이에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장연수는 바닥에 흩어진 담배꽁초 하나하나를 구둣발로 뭉개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정말 나를 뭘로 보고!”


본이를 찾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대충 시늉만 하다가 친정에서도 나간 사람을 어디서 찾느냐고 떼를 써서 넘어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유성준이 본이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달라졌다.


재수 없는 계집애, 아무것도 모르는 촌년, 신여성들과는 차원이 다른 구여성인 이본이 때문에 대일 은행 회장 아들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변한 것이다.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유성준의 눈이 터질 듯 붉게 변하는 것은 똑똑하게 보았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싶어 당황하는 순간 나동그라졌다. 전처는 나간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내쫓은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 놓친 물고기는 아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놓친 물고기는 대어였다는 말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연수는 아직도 코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더욱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 쫓겨난 주제에 나가자마자 사내놈과 인연을 만든 것인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찾을 수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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