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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Oct 02. 2024

60. 차현준의 꿍꿍이

“인사해요. 여기는 내 여자 친구 은서아라고 합니다. 서아야, 너도 전에 차현준 씨 좋아한다고 했지. 잘 됐네.”

프로들 사이에 낀 아마추어 서아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은서아라고 합니다.”

“가로수길 천사 은서아님,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차현준이 눈이 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차현준의 심쿵 포인트라고 말하던 웃을 때 양 볼에 쏙 들어가는 보조개와 생글생글한 눈웃음을 실제로 보자 깜짝 놀랄 만큼 싱그러웠다.


우혁이 안정적인 느낌의 기성 배우라면 차현준은 새롭게 각광받는 라이징 스타였다. 대중은 언제나 신선한 얼굴을 원하고 차현준은 최근에 그런 대중의 눈에 든 배우다.


“그럼 청소해 볼까요?”


우혁이 은하수 낙관이 찍힌 앞치마를 내밀자 차현준은 양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재차 부탁했다.


“선배님, 너무 불편합니다. 제발 말씀 놓아주세요.”

“그럴까 그럼?”

“감사합니다.”


차현준이 큰 소리로 싹싹하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촬영 중이던 팀 내부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차현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차현준은 앞장서서 카페 청소를 하고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서빙을 했다. 


우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커피를 내렸지만 서아는 신경이 쓰여 자꾸만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서아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차현준은 서아와 눈이 마주치면 애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서아와 우혁만 생각하고 들어왔던 손님들이 차현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서아는 확실히 우혁보다는 차현준이 인기가 더 좋구나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장 대표는 차현준이 이런저런 이유로 우혁에게 밉보였다고만 했었다. 


서아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지금 분위기로 볼 때 왜 우혁이 차현준이라면 얼굴색이 변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뜬 기분이었다. 그런데 차현준은 뜨는 해고 우혁은 지는 해 같은 느낌이었다. 


세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브레이크 타임으로 정했다. 서아는 오후에 판매할 가토 바스크 프로마주(gateau basque fromage)를 조금 더 구워 놓기 위해 오븐을 예열했다. 우혁은 세 시가 되자마자 드롭 포트를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둘만 남자 차현준은 다리를 벌린 채 의자 등받이 쪽으로 앉아 턱을 고이고 서아를 바라보았다. 


“가토 바스크 프로마주? 그 이름 어렵게 생긴 디저트는 뭐예요?”


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마음속으로 우혁을 애타게 찾았다.


‘우혁 오빠, 나만 놔두고 어딜 간 거야! 나 여기서 이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 내 말 못 들으셨나?”


차현준이 고개를 사십오 도쯤 기울이며 서아의 눈을 살폈다.


“이, 이건 우리가 흔히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로 알고 있는 거예요. 저는 프랑스 정통 디저트 명칭을 써서 가토 바스크 프로마주라고 표기했어요.”

“그으렇구나!”


차현준이 느리게 말하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어진 서아가 케이크 칼을 들고 차현준을 바라보았다.


“하나 드셔볼래요?”

“정말요? 제가 먹어봐도 될까요? 이거 가로수길 천사가 만든 케이크를 직접 먹어보다니 영광인데요.”


차현준이 두 손을 마주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아는 오븐에서 막 나온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그에게 내밀었다.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은 차현준이 눈을 감고 신음을 흘렸다.


“음, 손님들이 왜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겠어요. 와 진짜 혀가 녹는 것만 같은 달콤함이 있어요.”


그때 차현준의 케이크 옆에 커피 잔이 놓였다.


“케이크만 먹어서는 그 맛의 반밖에 몰라. 내가 내린 커피랑 같이 먹어야 우리 서아가 만든 케이크의 진짜 맛을 알 수 있지.”


우혁이 싱긋 웃으며 커피를 권했다. 차현준은 감사하다며 재빨리 커피 잔에 손을 내밀었다. 서아는 우혁이 나타나 정말 다행이라는 듯 숨을 몰아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자마자 카메라가 없는 화장실로 들어간 우혁이 장 대표를 호출했다. 


“차현준이 그 자식이 은하수 알바생으로 왔어.”

-뭐라고?


장 대표는 어이가 없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소문을 내지도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아서 지가 나를 피해야지 왜 자꾸 나한테 엉겨 붙는지 이해를 할 수 없어. 저 자식은 일부러 나를 자극하고 있잖아.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미안하다. 제작진이 아무리 서프라이즈라고 해도 내가 알아봤어야 햐는 건데.

“넌, 영화 수입 때문에 바쁜 거 알아. 그거 탓하려고 전화한 거 아니야. 저걸 이대로 놔두면 또 어

떤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거야.”

- 아무래도 차현준이가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거기 간 것 같으니 내가 나서서 제대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전화 끊고 마음 다잡아라. 그 자식 수에 말리지 말고.

“나는 괜찮은데 서아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더라고. 내가 차현준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걸 아니까 전전긍긍이야.”

-그 자식 일부러 그걸 즐기려고 들 텐데.


우혁이 한숨을 쉬며 어련하시겠냐고 했다. 우혁은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사흘 동안 지방 촬영장에 묶여 있던 날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배우들과 스텝들이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다음날 하루만 더 촬영하면 끝이라는 마음에 풀어져 다들 과음을 했다. 우혁은 내일 일찍부터 촬영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술이 어중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산책 삼아 숙소 주변을 거닐다 생각보다 외진 곳까지 갔다. 


숲길로 들어갔던 우혁은 음습한 기운이 싫어 돌아 나오다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에 발길을 멈췄다.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귀곡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울음이었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울어? 울기는 왜 울어? 내가 한 번 해주면 고맙다고 해야지 울기는. 야! 나가면 나랑 한 번 하겠다는 얘들이 줄을 섰어.”

“그럼 그냥 그런 얘들하고 하세요. 오빠 이러지 말고 저 놔주세요. 네?”


여자는 또 울면서 사정하고 있었다. 그제야 두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우혁은 몸을 돌려 소리가 나는 풀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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