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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Sep 30. 2024

59. 서프라이즈 알바생

우혁과 서아는 밥솥과 커피, 보험회사 광고를 찍었다. 두 사람의 출연료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서 우혁이 화를 내는 바람에 조정하느라 장 대표가 애를 많이 썼다. 서아가 아무리 예능에 출연해도 그녀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업체 측 입장 때문에 섭외 들어온 광고는 더 있었지만 수락하지 않았다. 


서아한테는 적은 액수가 아님에도 우혁 입장에서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 신경이 쓰였다. 지금까지 우혁은 광고를 찍으며 다른 사람의 출연료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더욱 충격이었다. 똑같이 고생하고 이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출연료라니 서아가 그런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 것에 계속 화가 났다. 


“어른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겠어.” 

“그게 무슨 말? 오빠는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는데?”


서아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혁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감정이입을 엄청 하게 되더라고.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너랑 결부되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내 일이 되거든. 전에는 나랑 다른 사람들의 출연료가 아무리 차이나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몹시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되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 우혁 오빠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는 뭐 거저 얻었나.”

“그래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우혁은 양손에 들고 온 캐리어를 카페 데크에 쿵 소리가 나게 올려놓았다. 


“하여튼 반갑다, 은하수!”


이주 만에 촬영이다. 지난번 촬영 때 너무 바빠서 이번에는 알바생을 게스트로 부른다고 했지만 제작진은 끝내 그 알바생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서아가 카페 문을 열자 오래도록 환기하지 않은 닫힌 공간에서는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큰일 났다. 냄새가 너무 심한데. 다음부터는 제작진한테 환기를 좀 시켜달라고 해야겠는데.”

“우리가 중간에 와서 한 번씩 환기할까?”


우혁이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럼 나는 좋지.”


두 사람이 청소 준비를 시작하자 구 작가가 헐레벌떡 달려와 막아섰다.


“아직 촬영이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렸다 시작해 주세요.”

“그냥 청손데 먼저 하면 안 될까요?”


서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묻자 구 작가가 손을 내저었다.


“알바생이 곧 올 거니까 그런 잡일은 알바생 시키세요.”

“알바생이 누군데 그렇게 구 작가님 얼굴에 설렘이 가득할까요?”

“어머? 내 얼굴에 그게 보여요?”


서아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구 작가가 재미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구 작가는 양손으로 붉어진 뺨을 가렸다.


“네, 구 작가님 팬심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요.”

“사실 두 분을 섭외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인데 패널로 참여하기로 했다 어그러졌거든요. 그런데 이번 주부터 시간이 난다고 해서 은하수 알바생으로 모셨어요.”

“우리를 섭외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요?”


서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자 구 작가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고 두리번거렸다. 우혁은 옷을 갈아입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았다.


“우혁 오빠한테는 비밀이에요. 서프라이즈거든요.”

“누구지? 그런 말 듣지 못했는데.”


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혁은 활동하기 편한 셔츠로 갈아입고 리넨 앞치마를 매며 나오는 중이었다. 우혁이 특별 제작한 앞치마에는 그가 좋아하는 은하수 낙관이 찍혀 있었다. 


“알바생 앞치마 있나?”


서아가 가방을 뒤적이며 묻자 우혁이 테이블을 향해 턱짓을 했다.


“저기 있어.”

“그런데 오빠, 혹시 우리 이 프로 찍는데…….”


서아는 말을 하다 말고 구 작가의 당부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뭐야? 무슨 말을 하다 말아?”

“응, 아니야. 구 작가가 서프라이즈라고 초특급 알바생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자꾸 궁금하네.” 

“뭐, 궁금할 것도 없어. 대충 여기 피디가 좋아하는 연예인이겠지.”

“피디가 아니라 구 작가가 좋아하나 봐. 얼굴까지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래? 쳇, 제 사심을 이런 데서 채우려고 하는 모양이네.”


조연출이 들어와 촬영 준비가 다 됐다며 알려왔다. 우혁과 서아는 손을 붙들고 나가 천천히 카페 문을 열었다.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햇빛이 쨍하니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내일은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이런 날씨면 제대로 된 해돋이를 볼 수 있을 거 같다며 우혁의 눈이 반짝인다.


두 사람이 청소를 시작하자 저만치 해변에서 카메라를 등지고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실루엣만 봐도 모델 같은 느낌이었다. 우혁이 빗자루 질을 하다 말고 손으로 해를 가린 채 우두커니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실루엣만 보이던 남자가 점차 가까이 다가오자 스타일이 보였고 곧 얼굴이 확인되었다. 서아도 알바생의 정체를 확인하고 놀라서 우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혁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해를 가리느라 들고 있던 손을 움켜쥐었다. 


차현준 때문에 우혁의 심기를 거슬려본 적 있는 서아는 이후로 차현준의 이름을 입에 담아본 적 없었다. 우혁 또한 굳이 차현준에 대해 거론하지 않아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알바생이 차현준이라니 서아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자꾸 우혁을 흘끔거렸다. 


서아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차현준이 가까워지자 우혁의 얼굴은 부드럽게 바뀌고 움켜쥐었던 손도 다시 펴졌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차현준이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혁은 차현준이 알바생이라는 사실에 몹시 놀랍고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차현준 씨, 반가워요. 우리 알바생인 차현준이라니 이거 대박인데요.”

“선배님, 말씀 놓으세요. 제가 은하수에서 알바를 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제작진 틈에 있는 여자 스텝들이 입을 가리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서 신음에 가까운 찬탄의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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