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산길을 걷다 보면 배낭을 메고 허리춤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매단 아주머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분들이 허리를 굽혀 부지런히 봉지 안으로 주워 담는 것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나는 도토리다.
어르신들 말씀이 예로부터 흉년이 들면 도토리라도 먹고살라고 도토리가 잘 된다고 했다. 가뭄이 계속되던 해 도토리가 풍년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수리나무에 도토리가 많이 달리는 모양이다.
산책을 하던 나는 발밑으로 굴러 내려오는 도토리 한알을 주워 손바닥 안에 굴려보다 도로 집어던졌다. 도토리가 많이 달리자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예년보다 더 많아졌다. 날마다 산에 올라 한말씩 도토리를 주워 온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도토리를 까기 위해 도토리 까는 기계를 구입했다는 사람까지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니 먹을 수 있는 게 지천인 세상에 굳이 야생동물들이 먹고살아야 할 도토리까지 탐을 내야 하느냐”며 타박했다.
팔당댐 근처에 유명한 도토리 음식 전문점이 있는데 지날 때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어이없게 여겨졌다. 아니 그깟 도토리묵을 먹겠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단 말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을 흉보는 것은 겉으로는 야생동물 걱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도토리가 그렇게 맛있는 식재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도토리가루를 한 봉지 얻었다. 한 번도 묵을 쑤어보지 않은 나는 ‘이걸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왕 들어왔으니 시도라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서 도토리가루 한 컵에 물을 여섯 컵 넣고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만들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뭉근한 불에 쉬지 않고 저어주기만 하면 그다지 어려운 게 없었다. 양이 적으니 젓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적당히 진득해졌다고 느꼈을 때 유리 용기에 부어서 굳혀 놓으니 그럴싸한 도토리묵이 완성되었다.
도토리묵이라고 같은 도토리묵이 아니었다. 별맛을 모르겠던 도토리묵은 내가 정성을 들여 만들어내니 색다르고 귀한 음식이 되었다. 도토리묵에 멸치와 표고버섯을 넣고 육수를 만들어 묵은지를 썰어 넣고 묵밥을 만들었다.
나는 남편과의 저녁상에 묵밥을 내놓으면서 우리 산에서 난 도토리로 만든 가루로 내가 직접 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참 신기했다. 우리 조상들은 떫은 도토리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냥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인데 그걸 껍질을 까고 말려서 갈아 앙금을 내려 전분을 만들고 거기에 물을 섞어 끓여 이런 음식을 만들다니 그 슬기로움에 감탄할 일이었다.
이제 나는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을 흉보지는 않는다. 도토리가 묵이 되는 과정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조상님의 슬기가 숨어 있었다. 다만 야생동물들이 겨울에 먹을 만큼은 좀 남겨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