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by 은예진

재수 종합학원에 근무하는 남편은 대학수능이 끝나면 두 달씩 백수가 된다. 계약직 단기 고용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한번 고용한 직원은 계속 데리고 가는 것이 옳다고 여기던 시절에는 수능이 끝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유급 휴가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어서 수능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백수가 되고 만다.

 이왕 백수가 된 거 노심초사할 것 없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된다. 마음은 그렇게 먹으려 노력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어서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이 된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로 그동안 일요일에도 근무하느라 제대로 뵐 수 없었던 장인·장모님을 찾아뵙는 일을 꼽았다.


 남편이 점심 한 끼 사드리러 가겠다고 연락을 드려놨더니 친정어머니는 사골을 한통 가득 끓여 놓으셨다. 변변치 못하게 겨울이면 집에서 놀고 있는 사위가 마뜩잖을 만도 하신 부모님은 그래도 그게 안쓰러워 사골을 끓여 놓으신 거다.


출근하면서 남편 세끼 챙겨 먹이기 어려울 테니 한 끼는 이걸로 해결하라고 비닐에 싸고 다시 통에 넣어 자동차 트렁크에 챙겨주셨다.


 친정어머니가 끓여주신 사골은 동네 정육점에서 끓여 파는 사골 국물과는 농도가 다르다. 고기를 잔뜩 넣어 진하게 끓여놓은 사골국에 파를 넉넉하게 넣어 한 끼 먹으면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먹고 있을 때 서울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감기에 걸려서 며칠째 공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더니 너무 우울하다’며 눈물 이모티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 문자를 보여주며 아이가 많이 힘든 모양이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무래도 한번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갱년기를 호되게 앓느라 몸이 좋지 않아 직장에서 퇴근한 시간에 서울을 따라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친정어머니가 보내주신 사골 국물에 고기를 넣어 1회분씩 포장을 하고 김장김치를 썰어 통에 넣었다.


그걸 들고 늦은 시간에 딸의 자취방에 간 남편은 편의점에서 산 즉석밥과 함께 김치와 국물을 펼쳐 놓았다. 몸도 마음도 탈진해 있던 딸아이는 아빠 앞에서 사골 국물 한 대접을 다 먹고 배가 뜨끈뜨끈해졌다고 활짝 웃었다.


 그날 남편이 들고 갔던 사골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겨울이면 마음고생하고 있을 사위와 딸을 걱정하는 친정어머니의 사랑이 한번 들어갔다. 그리고 돈을 잘 벌지 못해 남들처럼 좋은 원룸을 얻어주지 못하고 허름한 월세방에 딸을 들여보낼 수밖에 없어서 항상 미안한 아빠가 겨울밤 아픈 아이를 걱정하며 달려간 사랑이 한번 더 들어가 있었다.


그 내리사랑을 먹고 몸을 추스른 딸아이는 다음날 힘차게 일어나 다시 공부하러 나갔다고 웃음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아무리 추운 날도 딸아이의 몸과 마음을 덥혀 주었던 그 사골 국물에 담긴 내리사랑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뜨끈뜨끈해진다.




예전에 쓴 글을 올리고 있는 거지만 대부분 시간이 흘러도 특별히 변할 게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리사랑은 모든 게 변했네요. 남편은 더 이상 학원에 근무하지 않고, 딸은 공부를 마치고 취업해서 결혼까지 했으며, 엄마는 이제 치매로 음식을 하지 못하십니다.


모든 게 변했지만 치매 걸린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을 걱정하고 남편은 딸아이의 안부를 묻습니다. 조금 형태가 바뀌더라도 내리사랑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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