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합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과대표를 맡고 있던 선배는 단합을 부르짖으며 후배들을 다그쳤다. 당시 나는 단합이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는 ‘하면 된다’는 구호처럼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여겼다.
최근에 한우 작목반 모임에서 만난 M 씨는 몸만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부지런하다. 시간이 나면 항상 목장 운영을 어떤 식으로 해나가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해 궁리한다.
궁리는 실현 가능성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누어져 어떤 것은 폐기되고 어떤 것은 현실이 되기도 하는데 M 씨는 그러한 궁리의 결과가 대부분 만족스럽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하루는 M 씨가 자신의 목장을 어린이 체험농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M 씨는 어떤 식으로 체험 농장을 운영할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소를 향해 볏짚을 들고 가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였다.
그 궁리는 아직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폐기된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궁리가 좀 더 여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의 목장 운영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M 씨의 궁리가 작목반 모임에 나가면서 조금 더 범위가 넓어졌다. 이제 M 씨는 나 혼자만 잘하는 것보다 우리 다 같이 잘했을 때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더 크다는 것에 눈을 떴다. 그래서 작목반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M 씨의 한우 사육 경력이 짧다는 것이다. 수십 년 소를 길러온 분들에게 M 씨의 모습은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의욕만 넘쳐서 날뛰는 형국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M 씨는 자신이 구입한 자가 베일러를 활용한 공동 작업을 구상하기도 하고 쇠고기 공동 판매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작목반에서 추진할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M 씨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작목반 일에 나서다 보면 당신 집안일에 소홀해지기 쉽고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 텐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M 씨가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같이 하면 더 쉽게 잘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뜬 이상 혼자는 할 수 없는 거라고, 어렵지 않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들으며 학창 시절 단합을 부르짖던 선배가 떠올랐다.
나는 끝내 내 개인적인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선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떤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다고 내 개성이 죽는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누군가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마뜩잖게만 여겨졌다. 이제는 뭘 좀 알 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같이 가다 상처받을 M 씨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설혹 같이 가느라 눈앞의 작은 이익을 놓치더라도 끝까지 같이 간다면 결국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