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던 중 프라이팬을 집어 들다 놓치고 말았다. 가지볶음을 하고 나서 눌어붙은 양념을 불리기 위해 물을 부어 놓은 터였다.
아뿔싸! 기름과 간장양념이 섞인 냄새나고 미끈거리는 물이 싱크대와 주방 바닥을 뒤덮었다. 주부들이 가장 끔찍한 일로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냉장고에서 김치통 꺼내다 엎는 일이다. 그냥 엎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와 주방 바닥 경계에다 붉은 양념을 잔뜩 엎어 놓는 것이다.
바닥도 닦아야 하고, 냉장고도 치워야 하는데 아무리 행주질을 해도 어디선가 자꾸만 고춧가루가 묻어난다. 지금 저질러 놓은 일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는 일이다. 나는 키친타월을 든 채 망연자실 어디부터 닦아야 할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우선 바닥을 훔쳐내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싱크대 손잡이와 문짝 사이사이 찌든 때까지 닦아내게 되었다. 프라이팬을 뒤집어엎을 때만 해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실수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싱크대 청소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주방은 말끔해졌다. 전화위복이다. 나는 사자성어 중에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좋아한다. 경험이 미천하던 시절에는 한번 화는 끝까지 화인 줄 알았다.
변방의 늙은이가 말을 잃어버렸을 때 상심했던 것처럼 내게 닥친 화에 상심하곤 했다. 하지만 불혹을 넘기면서 화가 얼마든지 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변방 늙은이가 잃어버렸던 말이 준마를 데리고 왔듯이, 그 준마가 다시 아들의 다리를 부러트렸지만 덕분에 전쟁에서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 해 봄 일조량 부족으로 썩어 버린 야채와 과일 사진이 신문에 매일 올라왔다. 농민들 한숨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토마토 산지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모종이 썩어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요즘 우리나라 농가에는 재앙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복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노력이다. 새옹지마는 요행을 바라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상심하지 말라는 말이다.
경험을 통해 다음 화를 미리 막는 것 또한 큰 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연재해도 전염병도 우리가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인 일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대처 능력을 키웠다. 화가 복이 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
아무쪼록 2024년 새해 복 터지는 소리만 들려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