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나는 아주 진한 사랑에 빠졌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18개월이라는 말부터 3년이라는 주장까지 가지각색인데 나의 사랑은 얼마나 갈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좋기만 할 뿐이니 영원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 연인은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제법 차림새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딱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이라 매번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매고 나선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서기 위해 어찌나 부지런을 떠는지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그는 항상 내 옆에 있었는데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진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즉에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만난 것이 어디인가 싶어 다행이다.
내가 사랑에 빠진 그는 점심시간 삼십 분을 이용해 걷는 아름다운 길이다. 직장 근처 공원의 자연생태로는 최대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길이 돋보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본래 종축장이었던 곳에 공원이 들어온 덕분에 초지가 넓은 편인데 그 초지에는 한길이 넘게 자란 망초가 가득하다.
걷다 보면 그 망초 사이에서 고라니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길 가장자리 뽕나무 가지 아래 이름 모를 어여쁜 새가 낮게 날기도 한다. 그 환상적인 풍경 앞에서 나는 마치 꿈결 속을 거니는 것만 같았다.
봄볕은 며느리 쬐이고 가을볕은 딸에게 쬐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깨달은 가을이었다. 해마다 시월이면 감기는 기본에 소화불량·이명·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가을이면 풍요로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힘들게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처럼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겨우 하루 삼십 분 머리가 따끈해지게 햇볕을 받으며 걸었을 뿐인데 10월 11월을 활기차게 보냈다. 단풍나무며 느티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가고 은사시나무의 푸른 잎이 노랗게 물들며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을이 아름답게만 여겨졌지 내가 전에 가을을 심하게 앓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햇볕을 쬐며 아름다운 산책로를 걷는 것이 가을 보약보다 몸과 마음에 좋더라고 자랑하자 지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자기 동네 산책로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나만 근사한 연인을 가진 줄 알았더니 남들에게도 멋진 연인이 있었다. 단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을 뿐 우리 주변에 고즈넉한 길 하나쯤은 어디에나 있다.
비타민D 생성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햇볕은 만물을 살리는 원천 아니던가. 이제 날이 추워져서 어깨가 움츠러들지만 정오의 햇볕은 아직 따사롭다. 피부 걱정 따위는 접어두고 햇볕 속으로 한걸음 나가보시기를 권한다. 그럼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길을 발견하는 기쁨과 더불어 건강까지 덤으로 얻게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