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K 씨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꼭 필요한가에 관해 제게 물었지요. 그때 K 씨에게 제가 답다운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K 씨보다 연장자인 저는 자칫 제 경험을 과신해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말을 하게 될까 봐 조심스러웠습니다.
남의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채근하고, 아이가 하나인 부부에게는 왜 하나만 낳았느냐고 질책합니다. 딸만 둘인 부부에게는 아들이 없는 것이 얼마나 허전한 일인지, 아들만 둘인 부부에게는 딸이 없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떠들어댑니다.
이러한 말을 제가 불쾌하게 여기다 보니 K 씨의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K 씨의 말이 자꾸만 떠올라 이 지면을 빌려 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작년 봄에 화분 하나를 샀습니다. 칼랑코에라고 하는 주황색 꽃이 핀 식물을 사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예뻐했습니다. 관심은 꽃이 있는 동안 뿐이었습니다.
꽃이 지고 나자 화분은 베란다 구석으로 밀려났고 물 주는 일도 점점 뜸해졌습니다. 버리는 것조차 귀찮아서 일 년을 버려뒀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칼랑코에가 올봄에 다시 꽃봉오리를 내밀었습니다.
칼랑코에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동안 반성과 경탄, 죄책감과 숙연함 등 여러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작은 화초를 키워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로애락의 진폭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경험은 다름 아닌 ‘아이를 키우는 일’입니다.
이는 K 씨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모를 힘들게 하고 화나게도 하며 때때로 부모에게 그 감정을 잊게 할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 나갑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 성장하는 것은 부모의 내면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과다한 사교육비, 학교 폭력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이를 키울 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부모님처럼 아이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쾌락과 다르다고 합니다. 쾌락은 단순히 순간의 기쁨이지만 행복은 과정을 요구합니다. 행복은 꼭 즐거운 것만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가 이야기하더군요.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 과정이 복잡하고 많이 기다려야 하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일이 또 있을까요.
지면을 통해 K 씨에게 왜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조언을 통해 K 씨가 잠시 생각할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