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by 은예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에 <원더풀 라이프>란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한다는 림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림보에 들어온 이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순간을 선택하고 저승으로 떠난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감독의 의도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가에 대해 되새김질해 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만약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중의 하나를 가져간다면 어느 순간을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장면 하나를 선택했다.


 내가 저승에 가져가고 싶은 장면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한 끼의 밥을 먹는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식구라는 말은 밥 식(食)에 입 구(口)를 쓴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 식구인 셈이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은 단순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날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형제자매, 그 형제자매의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모였다. 자리는 떠들썩했고 먹을거리는 풍족했다. 가진 재주라고는 글 쓰는 재주 하나밖에 없는 내가 그 작은 재주로 상을 받았기에 축하를 겸해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자리가 되었다.


 당시 어머니는 만성 통증에 시달려서,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다쳐서 고생하신 한 해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조카는 왕따를 당해서 죽고 싶다는 소리를 했고, 이제 어린이집에 들어갈 만큼 자란 어린 조카는 용변을 보는 것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넘기느라 힘겨워했고, 대학에 들어간 딸아이는 신입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크다면 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그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해의 갈등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모일 수 있었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떤 철학자는 완전한 행복이란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고생해 보지 못한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도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원더풀 라이프가 그 순간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한 해 동안의 고통과 힘겨움을 이겨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희망과 웃음 뒤에 아픔 한두 개씩 모두 안고 있지만 그래서 행복인 것이다.


새해에도 그렇게 ‘원더풀 라이프’가 되기를 빌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분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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