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마지막 최종보스. 나는 지방흡입수술을 받았다. 나의 하체컴플렉스는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껄껄이의 외모평가와 남자친구의 칭찬, 어쩌다 받는 플러팅들이 외모만이 나의 유일한 가치임을 상기시켰고 어린 나는 거기에 넘어갔다. 껄껄이는 지적만하지 않았다. 그는 칭찬과 지적을 동시에 했다. 어디는 괜찮은데, 어디가 안 예쁘다.
돈도 없는 22살 대학생은 수술비를 모았다. 부모님 용돈은 생활비로도 부족했기에 나는 과외를 하며 돈을 모았다. 당시 400만원이면 대학생이라는 위치와 물가를 감안했을때 큰 돈이다. 그 큰 돈을 들여 수술할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 돌이켜보면 쓴 웃음이 나온다.
의사는 매직으로 내 허벅지와 엉덩이 종아리 이곳저곳에 타원들을 그렸다. 그 부분의 지방을 빼겠다는 뜻이다. 의사는 더 빼고 싶은 부위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상상력이 없었다. 알아서 전문가가 해주겠거니 하며 없다고 했다. 수술에서 깨어나고 나는 잘 걷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압박복을 입고 절뚝거렸다. 절뚝거림이 무려 2주넘게 지속되면서 나는 걷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나님에게도 빌었다. 걷게해 주시면 열심히 믿겠노라고.
그러다 3주가 지날 무렵 드디어 절뚝거리지 않고 걷게 되었다. 내 다리를 보면 지방이 빠진 부위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리 모양이 별로였다. 허벅지의 윗부분- 엉덩이 가까운 곳은 지방을 많이 뺐는지 두께가 얇아졌다. 그러나 무릎 과 가까운 아래쪽 허벅지는 빼지 않아서 그대로였다. 결국 허벅지 위쪽과 아래쪽의 둘레가 비슷해져버렸다.
결국 짧은 옷을 입었을 때 날씬해보이는 효과가 미미했다. 대부분의 하의, 특히 내가 입고 싶었던 반바지나 치마들은 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기장인데, 무릎 바로 위의 허벅지는 달라진게 없으니…내 하체는 여전히 둔탁해보였다.
난 좌절했다. 하나님께 걷기만 해주시면 된다고 빌때는 언제고, 걷게 되자 다리모양 마음에 안 들어서 불평했다. 병원에서는 후속관리 3회를 제공했다. 후속관리를 받으면서 허벅지 아래쪽 두께가 그대로라 좀 그렇다고 했지만, 매직으로 동그라미 칠 때 말했어야 한다고 했다. 롤러로 밀면 도움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처음 받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전문가는 완성된 모양을 생각할 수 있어서 전문가 아닌가.
그래도 바지를 입었을 땐 조금 날씬해진 느낌이 들었다. 수술한 김에 다이어트도 신경을 써서 2-3kg정도가 빠졌다. 얼마의 시간 후에 몸무게는 돌아왔다. 몇 kg을 빼든, 나는 다시 돌아왔고, 애초의 시작점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지방흡입술은 지방세포 자체를 빼내는 일이다. 그랬는데도 몸무게가 계속 는다는것은 그만큼의 지방이 다른데에 쌓이는 것을 뜻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돈을 벌었다. 그것으로 새로운 병원에 가서 재수술을 상담했다. 재수술은 더 비쌌다. 나는 예전의 경험을 살려 의사가 디자인 하는 부분만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기 전에 거울을 보며 세세하게 생각했고 의사에게 의사표현을 했다. 나는 좀 소심한 편이었지만, 몇백만원의 돈 앞에서 절로 요구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의 경험으로 알았다. 그렇게까지 세부적인 디테일의 디자인, 내가 원하는 모양의 다리는 어차피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타고 나야 한다. 나는 단순하게 그 부분이 지방만 빠지면 만족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지방흡입의 부작용을 치면 여러가지가 나온다. 흉터가 생기는 것, 특정부위가 함몰되는 것, 유착이 일어나거나 울퉁불퉁해지는 것, 생각보다 효과가 없는 것, 다른 부위에 살이 찌는 것 등.
나의 다리는 조금 날씬해졌고 유착이나 울퉁불퉁함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흉터가 생겼고, 모양이 약간 부자연스럽다. 지방을 빼면 다른 부분에 살찐다는 말은사실이었다. 원래 나는 상체에는 살이 안찌고 하체에 살이 찐다. 그러나 하체 지방흡입 후에 상체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 사고없이 울퉁불퉁해지지 않았으면 됐다고, 지금은 이런 마음이다. 부작용은 다수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겐 생기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방흡입술이 더 대중화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귀여운 지방이를 본다. 지방흡입 시장 규모는 연 22조에 달하며 한 병원은 연간 30톤의 지방을 빼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나는 지방흡입술이 나쁘다 위험하다 같은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부작용과 위험성은 찾아보면 나오고, 내가 뭐라고 나쁘다고 말하겠는가. 사실 수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부작용 있다는 말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큰 컴플렉스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외모나 살에 깊이 매몰되는 것이다. 너무 자세하게 자기 몸을 뜯어보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거울로 내 몸을 자주 뜯어봤다. 지방흡입수술을 하면서 더 그렇게 되었다. 왜냐하면 병원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에서 나는 더 많은 시술의 종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리를 하나하나 뜯어보게 된다. 무릎 위의 살의 여부라니. 남자 친구에게 샤넬라인의 존재를 알려주었더니 그제야 무릎살을 인식했다.
-나는 무릎살이 많아. 근데 너는 없어. 여기 부위 말이야. 이게 샤넬라인이래.
-진짜 그렇네. 진짜 생각도 못해본 부위다.
요즘에는 허리지방을 빼서 골반에 이식하여 허리는 잘록하고 골반은 넓게 만드는게 유행인가보다. 사실 콜라병 몸매가 여성스러움의 상징이며 아름답다는 언설은 대중화된지 오래지만, 그래서 그런 수술제품이 하나의 이름을 달고 출시되었겠지만, 제품으로 출시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앞장서서 미적기준을 단일화하고 강화하고 있는 것이 나는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만족한다. 그리고 불만족 해야한다. 우리가 무엇을 불만족할 것인지는 자본이 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주면 그제야 우리는 무엇에 불만족해야할지 결정한다.
스티브잡스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뚱뚱하면 날씬해지길 원하고, 날씬한 사람은 마르려고 한다. 마른 사람은 가슴이 작아서 콤플렉스고, 날씬한데도 라인이 없다고 마음에 안 들어한다.
그렇게 벗은 몸을 뜯어보면 웬만한 사람 아니고는 다 별로다. 셀룰라이트, 쳐진 살, 두툼한 살, 탄력없는 살, 접힌 선 등, 없는 사람이 없다. 나는 지금은 내 몸을 별로 뜯어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후회하는 것도 없다. 다만 아쉬운 건, 20대에 살빼려고 쓴 돈으로 비트코인이나 테슬라를 샀다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한다. 약간 날씬해진 내 다리를 보는 것보다 진짜 백만배는 행복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