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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Oct 11. 2024

일상 스케치로 언제까지 버티려고

마그마같은 내면 마주하기 big thanks to 무지개

언제부터였나, 복잡하고 들끓는 마음을 감추려고 일상 스케치를 쓰며 어떻게든 버틴 것이. 리보트릴정 2밀리그램을 7일분 타 먹으며 힘을 내었다. 그리고 14일분, 새벽산책을 해냈다. 그건 약이 만든 힘일까 아니면 내가 가진 힘이었을까.


현대인의 우황청심환이라 여기고 복용을 해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나에게 약이었나, 독이었나. 더 버티고 스스로 굴 속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그럴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어. 하는 두 개 서로 다른 생각이 서로 팽팽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던 건 여름방학부터였다. 5월에 위클래스 선생님이 학부모의 정신건강도 중요하다며 병원을 예약하는 거 좋은 생각 같다 하셨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었는데, '예방책이죠, 네, 부탁드려요.' 호호.


올봄과 여름은 기록적인 더위만큼이나 강력한 우울감이 서서히 나를 굴복시켰다. 펄펄 끓는 냄비 속에서 서서히 익는 개구리처럼 내 정신도 용기도 쪼그라들었다. 겁쟁이가 되었다. 다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게 잘못하는 거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우리는 어떡해.


다시 보니 역시 나를 일으킨 건 약이다. 그래도 힘을 되찾자마자, 새벽산책을 결심하고 꾸준히 충실히 살아보려 악을 쓴 것은 내 힘이다. 이렇게 주장해도 내심 자신은 슬슬 빠져나간다. 아직 용기가 덜 채워졌다.


바삐 몸을 움직이고 밤이 되면 잠에 들 수 있겠다 싶어도 또 밤새 잠을 설칠까 지레 겁을 먹고 취침 전 약을 챙겼다. 사흘째다. 의사쌤이 충분히 피곤하고 잠에 들 수 있겠다 싶으면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새벽 산책도 오전 댄스 수업도 다녀왔고, 곧이어 인사이드플로우 수업도 참가했다. 아이들 밥도 챙겼고 금요일이라고 기분 내며 기쁨이랑 미니 저녁 산책도 했다. 지난주부터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를 반시간 정도 보다가 끝내지 못했다. 이젠 기쁨이 차례다. 포켓몬에서 칠색조가 무지개 빛깔을 내며 빛난다.


그러고 보니 아침엔 무지개를 마주 했다. 포켓몬 번쩍이는 칠색조를 보니 떠올랐다..


대략 이랬다. 실물을 그대로 전할 수 없다. 그림을 배워야 하나.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겠답시고 마구 덤볐었다. 


처음 겪는 돌봄러의 삶은 일상이 정체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고 무사히 하교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불안감에 빠져 그 순간을 충실히 지내지 못한다. 오분대기조의 시간이 끝나길 바라다가도 이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하게, 내 역할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불타다가 다시 비관적이 되어가길 몇 번이었는지. 


결국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깊고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기만 했을 것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그때의 나다. 지금은 오히려 무엇 하나 삐끗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셀프 숙제를 줄줄이 소시지로 만들었다. 자기에게 더 많은 것을 늘 요구하니 시간은 매일 부족하다... 


이래서 나는 깊이 푹 푹 삽질해서 마그마 찾듯이 부글부글 끓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 싫었나 보다. 삶을 비관하고, 내가 지나온 최선이 아닌 차선책으로 채운 모든 시간을 부정하는 나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산책은 잘 시작했다. 이제 목표로 한 30일이 아마도 이틀 남았다. 이렇게 또 대나무 숲에라도 자랑질을 해서 자신감을 끌어올려야 산다. 한동안 산책 일지를 내려놨다. 산책은 성공적인데, 일지는 국민학생 시절의 내가 쓰고있길래, 걷는 것이 계속되는 한 일지야 언제든 이어서 쓸 수 있으니까.


엊그제는 막냉이 기쁨이가 아침에 엄마에게 말한다."엄마, 왜 아침마다 날 좋아해요?"라고. 


내가 저녁에는 시큰둥했던가? 저녁에 함께 책을 읽거나 노는 시간이 부족했나? 산책이.었.다, 산책을 마친 내가 아침에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너를 맞았던가? 


표현해 주니 고맙다. 그 표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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