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金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내다가, 종종 뭔가를 쓰고 싶다고 느끼면, 나는 종이를, 혹은 가상의 종이나 상영관을 두고 대체로 반복적인 문구를 떠올린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주 거창하고, 의미심장한 시작이고 싶어서 한참 뜸을 들이다 결국 식어버리는 게 다반사. 딱히 대단한 걸 찾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해도, 특정한 시작을 찾는 일은, 여러 행성과 은하계가 무한히 펼쳐진 공간, 그것도 매순간 팽창하고 이동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한 것들 사이에서, 개미나 먼지 같은 나라는 인간이 손가락 하나로 콕 찍어서 좌표를 지정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여태 참고, 미루고, 누르고, 치워놨던 이야기들이, 이미지들이, 정보들이, 애초에 잘못 정리된 옷장에서 물건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오듯, 그렇게 나를 덮치곤 한다. 한참을 물건 더미에서 옛 추억을 헤집듯 신나게 놀고 있지만, 결국엔 정리가 아니라 다시 다 혼돈의 상태 그대로 쑤셔넣고는 다음에, 라고 하고 만다. ‘다음’ 같은 거, 없는데. ‘내일’조차도 없는데.
수면이며 식사며 생활의 모든 시간이 엉망이 된 상태에선, 순서대로 와야할 ‘내일’이라는 시간대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늘 오늘뿐. 너무나 길게 늘여진, 탄력없는 오늘뿐.
비워야한다. 우주를 머릿속에 담고 있어선 안된다. 그 속에서 바늘을 찾을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 나는 왜 거꾸로 가려드는지.
도움과 요행을 바라는 것도 그만. 운명과 긍정의 힘 같은 것도 지금으로선 쓰레기 같은 것.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관둬야 한다. 아깝다거나, 더 좋은 게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쓸 곳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모든 헛된 기대와 집착도 버릴 것.
다만,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 것. 나를 방치하고, 때리고, 굴리고, 버려둔들, 뭐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거울이 보기 편해질 때까지, 계속 마주해야 한다. 귀찮은 것도 게으른 것도 자랑이 될 수 없는데 아주 이상한 허세를 부린다. 내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나 자신뿐. 왜 남처럼 더럽다고 쓸모없다고 욕만 하고 있지. 어째서 이런 주제에 타인을 판단하려 들지. 움직여야 하는 건 나고, 다른 사람, 다른 장소, 다른 시간,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어디에서부터의 문제도 아니고, 그저 지금, 선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해야하는 것. 다른 그 무엇도 끼어들 틈 없이, 순식간에 그렇게 당장.
지금이 아니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