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07화

차갑고 바삭한 활자

금 金

by 하이디 준

차갑게 식는 여름밤이 좋다. 숨막히던 낮을 지나 맛보는 한줄기 바람은 달아서, 아마도 여러 글쟁이들을 설레게 했던가보다. 한여름밤의 꿈 같은 것. 괜히 계절 설정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겠지. 어쩐지 달뜬 느낌의 여름밤. 홀로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요즘 나에게 더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 세상은 온통 활자로 재탄생되는 것만 같다. 모두가 제 몸 안에서 끊임없는 타이핑이라도 하고 있는 것마냥, 글자를 토해내고 뿌려댄다. 무심하게 초점 없이 바라보던 창밖의 풍경, 지붕의 색감과 나뭇가지 끝의 선과 점마저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활자의 파도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나를 짓누르던 공허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글자를 먹고 사는 괴물인 걸까.


그럼에도 기록되지 않는 시간들은 내 것이 되지 않고, 내 것이 되지 않는 나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아무리 즐겁고, 보람있고, 활기찼다 해도, 끝내는 보잘 것 없는 한 줌의 가루 같을 뿐. 나는 내 삶을 글로써 매번 다시 살아내지 않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 하얗게 타고 남은 유골 가루처럼 덧없는 것.


다른 것들로는 채워지지 않아. 나를 이루고 있는 것, 구성하는 것, 존재하게끔 하는 것.

그걸 부정하거나 잊어버리면, 나는 점점 투명해져간다.

또렷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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