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08화

한 조각의 말, 한 모금의 시간

금 金

by 하이디 준

혀라는 것은 애초에 즐기기 위한 도구로 탄생했음이 틀림없다. 음식의 맛, 사랑하는 이의 맛,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의 맛을 만끽하기 위해. 혀 위에서 정확하고 미묘한 소리로 굴러나오는 언어는 나올 때 즐겁고 들을 때 신비롭다. 그 소리와 그 소리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에 정말 뭔가 알 수 없는 화학 작용이라도 일어나는 양.


하지만 정말 감미로운 것은 시간의 맛. 때로는 시간의 맛을 볼 수 있는 공간에 가야한다. 실은 공간마다 시간의 질도, 양도, 기억과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어서, 시간이 맛있는 곳은,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와는 별개인 경우가 잦다.


너른 창을 가진 카페가 좋은 건, 여러 가지 시간의 맛을 볼 수 있기 때문. 나만의 시간이 가진 독특한 향에 취해도 좋지만,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내 상상의 소품들이 될 사람들의 시간 또한, 과자처럼 씹는 맛이 있는 메뉴랄까.


그러니 그 잘 익은 시간들을 하나 하나 정성스레 종이 도마 위에 따와서, 촘촘한 펜 촉으로 돌려깎고 깍둑 썰고 따뜻한 내 마음의 화덕으로 구워내면, 나는 실은 소박하고도 충실한 나만을 위한 만찬을 차린 셈이 된다. 정갈한 단어, 찰기 있는 문장. 간이 잘 맞는지, 대접할 만한지는 스스로에게 들려줘보면 안다. 살며시 입안에서 굴려보면, 음, 이걸로 됐다 싶은 정도.


다만 매일 같이 그렇게 혀를 즐겁게 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안다. 때로는 욕지거리가, 때로는 뒷말이, 때로는 악에 받친 비난이, 인스턴트나 매운 음식처럼 필요할 때도 있을 뿐. 그렇게 센 간과, 강렬한 불맛이 가끔은 덜 싱싱하고 살짝 썩어버린 시간을 재료삼아 먹어치우기엔 적합하다. 쿰쿰해진 시간의 곰팡내를 떨어내고 시큼털털해진 혀를 한 번 마비시켰다 원점으로 되돌릴 언어로.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강한 자극보단, 묘하게 입안에 여운을 남기는 삶의 쓴맛을 알아간다. 싫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콤달콤한 아이의 언어나 따가울 정도로 화끈한 사회의 언어보단, 그저 그 모든 걸 우려내고 남은 검은 한약 같은 한 잔이, 실은 이제는 몸에 더 좋다는 걸 체득해버려서 그럴테지.


오늘도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곱게 내쉬면서, 나는 내 시간을 한 모금씩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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