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가하면, 간혹은 혼란스럽게 머릿속이 그득 찬다. 머릿속이 답답해지면 마음은 덩달아 부어오르고, 숨이 가빠지고 조바심이 난다. 당장 그 모든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감.
답을 모르겠다. 홀로 결정을 내리는 게 가장 나에게 이로운 길이라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누가 가르쳐주기를 고대한다. 그 답이 맘에 들지 않으면 또 절망에 빠질거면서. 안정과 평화란 건 역시 참 깨지기 쉬운 상태다. 그걸 아주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처럼 자꾸만 착각에 빠진다. 결국에는 또 이런 시간이 찾아오고 마는데도.
낙성대에 갈 생각을 한다. 종종 해왔다. 몇 년 전처럼. 모든 걸 뒤집어버리고 싶은 때에 생각나는 장소. 별로 특별할 것도, 그다지 아름다울 것도 없는 장소인데, 이상하게 이런 시점이 오면 끌린다. 별이 떨어진 그곳에서 답을 찾고 싶어서, 라는 허무맹랑한 이유를 지어내 보기도 한다. 마치 그 곳에 가면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믿는다.
통찰력이 있다고 친구가 나를 평했다. 우습고 가여워졌다. 그랬으면 난 지금 또 헤매고 있지 않을 걸. 언제나 남들의 삶에 입을 대기는 쉽다. 하지만 내 자신에 이르면, 한없이, 밑도 끝도 없이, 무력해진다. 게다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건 대체 어디다 써먹어야 좋을지?
일의 순서와 마감일을 정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그 규칙을 되뇌이며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내 속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삶에 대한 내 모든 사소하고 중대한 결정들도,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야 진척이 된다. 어지럽다.
미래와 과거를 본다는 이에게 전화를 걸고 싶기도, 그렇지 않기도.
그가 온전히 내것인 내 삶을, 운명을 훔쳐보고 나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거란 사실이 꺼림칙하다. 동시에 전화를 해서 위안을 얻겠다는 심보 자체가, 몹시 천박한 비유와 비약일지 모르지만, 폰섹스 같다. 낯선 이에게 모든 걸 맡겨버리자는 건가.
하지만, 듣고 싶다. 누군가가 들려줄 내 삶의 비밀, 같은 것.
온통 벌레 먹은 구멍이 뚫린 세상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아니, 살만하다고 믿을 것 같은.
낯설지 않은 이가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처럼 많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