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21화

번데기

목 木

by 하이디 준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졌다. 다시 잠들 확률은 50프로도 채 안되는 것 같지만. 이런저런 이상한 꿈들을 기억해내는 빈도도 조금 높아진 듯 하다. 최근엔 그래도 잘 잔 편인 날들엔 간만에 날아다니는 꿈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꿈에서조차 유부녀이고 심지어 임신 중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던 꿈들에 비하면 좀 더 다채로워진 것 아닌가 싶지만, 한편으론 가끔 속에 여전히 찌꺼기처럼 메말라붙은 증오나 피해의식이 도로 부유물마냥 무의식 세계를 더럽히기도 한다. 그렇게 꿈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깨도 아이에게 영향이 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으로 배를 토닥거려 본다.


우습게도 그에 대한 질투의 항목도 늘었다는 걸 깨달았는데, 다른 여자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가 낳은 새끼 얘기를 하는 것도 꽤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 듯. 아직은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어찌되려나 싶다. 나뿐만 아니라 이제 내 아이도 비교의 영역에 감히 올리지 말라는 거센 독점욕을 잘 다스릴 수 있으려나. 언제나 쿨한 척만 하는 나에게 익숙해진 그가 이런 뒤틀린 속을 감당할 수나 있을지.


글을,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는 희미한 거품 같은 소망도 아주 작게나마, 드물게 수면 위로 올라와 퐁하고 터진다. 다른 어떤 이유들보다, 그저 그것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결말을 맞을지 나 스스로도 궁금해져서. 이제는 정말 누군가에게 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어쩌면 30대 이상으로 엄마라는 역할은 내게 좀 더 뻔뻔한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 아이를 위해서는 무서울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나는 단단해지고 있는 걸지도.


정작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이 모든 생각들을 할 틈조차 없어지겠지. 그럼에도 나는 종종 아이를 빨리 품에 안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다. 벌써부터 조금의 불편함도 싫다고 바둥거리는 작은 꼬마 녀석이 귀엽고도 가여워서, 서로 부대끼는 이 나날들이 귀하면서도 아주 살짝은 더디다. 막상 바깥 세상에 홀로 서게 놔두고 보면, 더더욱 애잔해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최근에 처음으로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얼굴이 웃기게 나온 초음파 사진을 본 이후 또 한 번의 묘한 심경의 변화랄까. 물론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원형 이야기인 미녀와 야수에서처럼 사랑 고백을 하면 외모가 탈바꿈하는 마법에 의존하고 싶었던 건지도. 하지만 역시 바뀌는 건 상대의 모습이 아니라 나 자신의 눈이다. 사진을 보고 몇 번이고 웃으며 결국 정을 붙이고 마는 것도 모성애의 힘인 건가. 그럼에도 내 경우엔 그런 이타적이고 인류애적인 냄새가 나는 말보단, 자기애의 연장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다른 인간들을 혐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아이들은 거의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반면, 오로지 내 경계 안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이 아이에겐 사랑을 고백하고 있으니까.


아직은 아이가 내 일부여서 가능한, 환상의 나날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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