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셋 14화

그래서 지금은 평범한 미온수 부부

화 火

by 하이디 준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연습을 많이 해도, 괜찮은 거 같아라며 무시하려 해도, 어느새 내 안에 생긴 빈 틈에 어쩔 줄 몰라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가 있을 때엔 어느 책을 들여다봐도 그닥 사고픈 맘이 들지 않았는데, 그가 가고 나니 뭔가 잔뜩 사는 것으로 틈을 메우려 한 게 아닌가, 집에 오고서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새삼 깨닫는다. 여행을 하면서, 그에게 맘에 들지 않는 점이 간혹 보였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편이 훨씬 좋았다. 역시 그를 믿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 행복하고 즐거워서 온몸이 가득 찬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여러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건 아마도 그 나름대로 좋았을 수도, 나빴을 수도. 하지만 전혀 다른 나를 생겨나게 했을지도. 가끔 내가 누구를 만났더라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이전에, 그가 나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이 생겨나게 했기에 가능해진 생각임을 잊지 않는다. 그는 평범하지만, 흔하지 않다. 그를 통해서만, 세상에 좋은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음을 믿게 된다. 그를 알고서야, 다른 남자들이 어떤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가 내게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인지를 상기시키는 것 외에, 비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성에 대해 너무도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흐릿한 상 외에 아무런 기준도 갖고 있지 않던 나는, 그를 만난 이후에야 차츰 기준을 하나하나 세워나간다. 결국 그를 이상형으로, 혹은 거의 가깝게 만들어버리는, 상당히 우습고 이상한 작업이지만. 나의 취향이라는 것도, 대체로 그에게 좋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가 가소로울 지경이다. 새삼 인연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고, 단지 필연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일 뿐이라는 게 실감이 난달까.


왜 그렇게 그가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할 거리야, 일반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생겨난 사실들이다. 처음엔 어떻게 그런 느낌을 받는지 설명할 수 없었음을, 그저 그가 거기 있었고, 그가 그렇게 다가왔고, 그래서 얼떨결에 맞이했을 따름인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그것이 타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행운에 가까운 행복이 되리란 것을 짐작했을리 없다.


때론 일반론에 흔들린다. 우리도 결국 남들처럼 그렇게, 별 다를 것 없는이라는 따끔하고 쓰린 감촉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다른 묘한 곁가지들이, 실낱 같지만 그런 작은 차이들이 우리에게 무수히 나 있어서, 결국 우리를 우리만의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믿고 싶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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