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火
또 다시 인공적인 빗속에서 하염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길을 잃었다. 냐아옹하고 그를 불렀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쉽게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답을 내주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가만히 거기에 담긴 그의 목소리를 느껴보기도 하며, 조용히 샘솟는 기쁨에 미소짓기도 한다.
그의 답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나를 삼켜버린 미로 같은 그 세계를 허물어뜨릴 힘을 가졌다. 틀리고 맞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집이다. 나에게 위안을 주는. 나를 안심시키는. 너무나 거대해져버린 그 피상적 세계에서 어찌할바 모르고 동동거리며 서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 따뜻하고 소박한 현실의 그에게로 돌아오게 만드는 구심점.
때론 나의 억지스런 고집으로 복잡하게 세워놓은 그 요란하고 추한 건물들을 그저 소탈한 웃음으로 무너뜨리게끔 만드는 그런 고지식할 정도의 현실성. 그런 게 아니야라며 그를 이해시키기보다 나는 그런 설명들이 애초에 부질없는 것임을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를 붙잡고 있는, 붙잡아주는 그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올라왔다. 멋모르고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지만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절실히 알아간다.
영화 ‘인셉션’에서의 ‘킥’이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그는 어쩌면 내 전용 ‘킥’인지도.
늘 영화 속을 맴돌던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
“아니, 아무것도. 그 무엇도. 전혀 후회하지 않아, 나는.”
그가 있기 전까지 나는 세상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가 있고서야 비로소 나는 세상에 닻을 내리고 정박해 세상이 존재함을,
그 안에 내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