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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와 ‘기사도’에 대해 얘기한 적 있다. 록발라드나, 남성들이 좋아하는 감성의 곡들에는 종종 자신이 한 여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절절히 고하는 내용이 많은데, 가끔 내가 거기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 여성에 공감하기보다, ‘한 여성만을 사랑하는 나라는 남자 너무 멋짐’이라는 남성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느껴져서라고 설명했더랬다.
그러자 그가 애초에 ‘기사도 문학’이 그 근원이 아니겠느냐고 답했고, 나는 조금이나마 그걸 공부한 사람으로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내가 대학 시절에도 요즘 유행곡이나 그 옛날 중세의 몇 음보 몇 절 시나 다를 게 없다고 한 거였다. 하지만, 그래서?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라고 하기엔 그것조차 남자들이 독점(?!)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애초에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끌리는 건 마찬가지 아니려나. 아니면 그것조차 내가 너무 ‘남성화’된 결과였을까?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깨달았던 초기에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처음엔 당연히 당혹스러웠고, 거부감을 느꼈고, 그런 나를 부정했고, 부정하는 나를 부정하는 악순환을 거듭했지만, 그걸 삼키는 인고의 시간이 지난 뒤엔 내가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나에게 사랑을 깨우쳐 준 그와 신이라는 존재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안다는 사실 자체에도 취했었다.
그러니까,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 너무 빛나 보여’라는 효과에 흠뻑 젖어있었단 거다.
다른 여자들이 대체로 어떻게 느끼는지는 영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남성들과, 적어도 나는, 아주 대단한 나르시시스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