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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y 03. 2020

신종 바이러스와 더불어 공존하는 어느 외노자의 삶

타이완에서 공존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전 세계가 신종 바이러스에 신음하고 있는 지금 이 현실에 조금 현실감이 없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호주 동남부의 대도시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의 안에 있었다.


'한 번 갈게~ 내년에는 갈 수 있을 거야.'


호주 동북부의 작은 타운 타운즈빌에 살고 있는, 대학 시절 잠깐 기숙사 방을 함께 사용했던 동생 현주에게 항상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약 10여 년 전 떠났던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운명처럼 한 호주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의 고향이자 가족이 있는 브리즈번 생활을 거친 후, 현재는 남편이 된 그 남자의 발령지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얼마 전 호주 시티즌쉽을 받고 새롭게 대학에 진학하게 된 그녀는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웠고, 오세아니아 대륙에 대한 호기심과 그녀와의 오랜 우정은 나를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게 하였다.




 중화권의 설날 연휴는 워낙 길기로 유명하고 (중국 대륙에서는 春節춘절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를 대만에서는 農曆過年농력과년 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농력=음력 과년=새해) 마침 유급 휴가도 새로 받았었기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만의 노동법이 개정되어서 회사에 입사 후 6개월이 지나면 추가로 3일의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다.) 내게는 약 열흘간의 시간이 생기게 되었고, 마침 설날 전에 받은 보너스로 자금적 여유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금상첨화였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의 가족들과 정말 즐거운 연휴를 보냈지만, 호주로 올 때와 호주를 떠날 때의 분위기는 사뭇 큰 차이가 있었다. 대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브리즈번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내게 마스크는 낄 필요가 없다고, 브리즈번은 아주 안전하다고 말하는 가족들의 말에 나는 억지웃음을 보이고 알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떠나기 전날 30분간 브리즈번의 온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며 마스크 5장을 겨우 구할 수 있었고(이미 1월 말 당시, 아직 영미권 및 오세아니아에서는 확진자가 5명 미만이었을 때, 호주의 큰 대도시들의 드럭스토어는 중국인 투어리스트들에 의해 마스크가 동이 난 상태였다.) 불과 몇 달 만에 호주 정부는 '록다운' 선언을 한 상태다. 내게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된다고 한 그 가족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그들 탓은 아니니까.



 나는 대만의 국적기인 중화항공의 티켓팅을 한 상태였고 1월 말이었던 그 당시 이미 대만 정부는 신속하게 중국인의 입국 금지를 시키고 대만의 국적기에도 중국인의 탑승을 전면 중지하였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극명하게 다른 중국과의 관계, 외교적 입장, 경제 산업의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만 정부는 국제적 입지가 상당히 좁고(중국에 의해 전 세계의 국제적인 기구에 가입을 못하는 상태다. WHO도 물론 가입되어 있지 않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의 입장도 나는 이해가 된다. 물론 대한민국의 방역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대만은 비교적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진 않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대만의 자화자찬식 미디어, 한국을 깍아내리는 보도가 확실히 존재하긴 하지만 초창기 마스크 정책부터 (이미 한국에 마스크 요일제가 시행되기 전부터 대만은 안정적으로 마스크가 공급되고 있었다.) 대만 국민들의 시민 의식은 내게 큰 자극을 주었다. 그동안 '대충대충' '적당히'로 대변되었던 대만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타이페이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대만 정부의 강력한 방역 조치의 특징 중 하나는 '확진자가 급증하기 전에 미리 차단한다.'이다. 나는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 중이라 헤드 오피스의 재택근무에 따라서 타이페이 지사인 이곳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택근무까지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진 않아서 이미 재택근무 두 달을 향해가는 현재의 상황이 퍽 신기하기도 하다. 팀의 리더는 항상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 미리 조심해야 한다.'라고 팀원들을 다독였고, 초반엔 너무 회사가 가고 싶어 괴롭기도 했지만 (팀 내에서 나만이 유일하게 재택근무를 싫어한다.) 현재는 많이 적응한 상태이다. 물론 대만은 록다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퍼블릭 헬스장에 운동을 가거나 마트에 쇼핑을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끼고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당하는 정도의 조금 귀찮음만이 추가됐을 뿐, 현재까지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물론 자주 가는 회전 초밥집이 회전판을 멈추고 개인 오더로 방식을 바꾼 점은 좀 불만이긴 하다. (백분 이해는 한다.)






 

 한국의 부모님은 전보다 연락이 조금 더 많아졌고, 안 그래도 혼자 사는 내 공간에 사람 그림자는 더더욱 비치지 않게 되고 올해 계획했던 한국행 및 여행 계획은 무산돼서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도 나는 대만에서 생활하면서 코로나와 공존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백신이 개발돼서 이 사태가 진정이 되고 재택근무도 얼른 끝나서 회사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정말 내 바람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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