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른 색의 사람들
병원이라는 곳은 참 다채롭다. 아파서 온 사람들, 나아서 나가는 사람들, 병간호하는 사람들, 치료하는 사람들, 단순히 일하는 사람들. 병원 내에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감정이 그 병원에 있다는 걸 병원에 있으면 느끼게 된다. 간단한 검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커피숍에서 하하 호호 수다를 떨고 있고, 갑자기 청천벽력같이 병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병원문을 나선다.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은 슬퍼 보이는 모습도 있었고, 이제 곧 퇴원을 할 모양인지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있는 모습도 있었다. 병원의사와 간호사는 큰 표정 변화 없이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먹고, 업무시간에는 업무를 보았다. 그냥 서비스 직종이었다. 나는 병원이라는 곳에서 직원으로도 있어봤고, 환자로도 있어봤고, 또 이렇게 보호자로도 있어본다.
환자로 있을 때는 나만 아픈 줄 알았다. 왜 내가 아픈걸 아무도 봐주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아프기만 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밀려왔었다. 그냥 한번 쓱 보고 가는 의사 선생님도 미웠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 양 날 한번 쓱 보고 가는 간호사선생님도 미웠다. 그러다가 또 나보다 아파 보이는 사람이 오면 내가 그 나마 낫다. 싶었다.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낫지. 나는 덜 아픈 거겠지. 싶었다. 못된 심보였지만 타인의 아픔으로 나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분이었다. 병원침대에 누워서 병원천장을 바라보면 깜빡이는 전등빛과 하얗고 까만 선만 보였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밖의 해는 보이지 않고 내가 보는 건 병원의 사람들과 전등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루가 가는지, 일주일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픈 게 가실 즈음 나는 그 병실을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프고 속상하기만 했는데, 나갈 때는 그런 마음 따위 들지 않았다. 그냥 배에 남은 수술자국과 지난 기억만 남았을 뿐이었다.
직원으로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나의 직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병원이라는 곳에 있을 뿐, 그 외 다른 직장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무미건조할 수가 없다. 온갖 감정이 다 뒤섞인 이곳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 좀 웃기려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그냥 병원에 다니는 직원일 뿐인 것이다. 내 눈에는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었고, 병간호를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대학병원소속이어서 더 못 느낄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다니는 병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나가다 울고 있는 환자나 또 보호자를 보아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제일 감정적으로 힘든 건 사실 보호자인 것 같다. 내가 아프게 아니다 보니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아픔을 공유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같이 울고 있을 수도 없다. 아픈 사람 앞에서 마음껏 웃고 있을 수도 없다. 냉정하게 있으면 왜 내가 아픈 걸 모르냐고 그런다. 같이 아파하면 그 또한 또 슬픔이다. 담백한 듯 담백하지 않은 감정표현은 정말 쉽지 않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가 아픈 걸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쏟아진다거나 아픈 마음보다는 오히려 생각이 없어졌다. 정말 생각이 없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점심쯤 가서 아빠랑 같이 밥을 먹었다. 그래도 외출은 가능한 상황이라 밖에서 외식을 했다. 외식하고 와서 나는 밀린 책을 읽고 있고, 아빠는 병실에 누워서 휴대폰을 했다. 그냥 집에 있었던 우리는 병실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아빠가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을 때 같이 따라갔다가 아빠가 나오면 같이 또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다이다.
집으로 왔다. 아빠는 병실에 있다. 내가 환자였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을 아빠는 느끼고 있겠지. 외로울 거라 생각되었다. 예민한 아빠 성격에 병실 내에 다른 사람들 틈에서 잘 잘 수 있을까? 괜찮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많이 아프겠지. 그래도 나름 큰 수술이라 2주 정도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아빠가 안쓰럽다. 건강은 자부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병실에 있다는 것에 아빠는 얼마나 속상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들만 수두룩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아니, 부정적인 결과를 아예 거르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잘될 거니까, 무사히 잘 병실을 나설 거니까.
병원은 참 그런 곳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 다르게 그곳을 보이게 하는 곳. 비단 그곳이 병원이 아니더라도 모든 곳에서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는 늘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입장이 되어본 적이나 있어?라고 묻곤 한다. 같은 곳에서 우리는 서로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곳이지만, 그 감정들은 어딘가 모르게 탁한 색을 보인다. 그리고 모두가 그 색이 맑아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