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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n 20. 2019

내 옷의 너덜함이 내 삶의 너덜함으로 느껴질 때

나만 이런 것임..?

이 브런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아마 출근 쯤이나 뭐 그랬을 것 같은데 당연한 소리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오래오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링크는 잊어버렸지만 생각나는 문구와 단어들을 검색해 다시 링크를 찾아냈을 정도니까.


지금이나 더 어렸을 때나 나는 늘 옷에 관심이 많았다. 더 어렸을 땐 옷을 잘 입고 싶어 여러 옷을 자주 샀는데, 갖고 있는 돈은 작으니 그 작은 돈을 쪼개 쪼개 주로 저렴한 옷들을 샀다. 그런 옷들은 한철이 지나기도 전에 보풀이 일어났고 실밥이 튿어졌고 한쪽이 말려올라가고 빵꾸가 났다. 그런 옷들은 대부분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도 이미 한눈에 봐도 질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고 그런 옷들은 보통 유행에 착실하게 따르는 편이라 다음 해만 되어도 왠지 손이 가지 않다 버려지는 그런 옷들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낡아 버려졌고 잘 빨고 관리해 오래 입더라도 그 정도 금액의 옷들은 그 금액의 티가 데번에 났다.


글쎄 실은 타인은 나의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을 테고 그래서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자는 짤이 유행했겠지만. 언젠가부터 그 옷들이 나의 가난함과 일상의 비루함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기생충의 기정이네 가족들의 옷에 반지하의 냄새가 스며든 것처럼 내가 입은 그 옷의 너덜함이 내 너덜거리고 삐걱거리는 삶을 보여준다는 뭐 그런 이상한 공포감을 느꼈다. 애초에 내가 그런 결핍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같은 게 없었더라면 이런 식의 옷을 사모았어도 별 고민하지 않았겠지만. (어쩐지 사모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게 느껴진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뤄냈을 때 나는 비로소 더이상 그렇게 가난하지 않게 됐다.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전세집으로 갔고 소액을 가족에게 매달 보내면서 찌꺼기처럼 내 마음에 남은 가족에 대한 부채를 제거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 부채는 평생 가겠지만. 어쨌거나 적지 않은 돈을 더 나은 집을 위해 모으고 여행을 위해 쓰고 가끔 맛있고 비싼 밥에 쓰고 그렇게 내 일상에 돈을 쓸 수 있다. 얼마 전엔 독립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TV를 샀다. 그렇다고 여유롭고 넉넉하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더이상 돈이 없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한 줄 짜리 김밥 앞에서 고민하지는 않게 됐다. 기준이 낮은 건지 더이상 가난하지 않게 됐다는 감각은 나에게 생각보다 쉽게 왔다.


독립을 하고서 일고여덟번 정도의 이사를 했는데 최근엔 혜화에서 선유도로, 그리고 선유도에서 지금의 강서 집으로 이사했다. 혜화에서 선유도로 이사할 시점은 내가 본격적으로 고정적인 수입을 내면서 집으로부터도 경제적 독립을 서서히 하던 시기였는데, 큰 김장 봉투 두 세 봉지에 버릴 옷들이 담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옷이 많았다고? 하나하나 봉투에 담으면서 그 옷들은 하나같이 (산 지 오래 되지도 않았지만) 보풀이 일어나고 실밥이 튿어지고 그래서 남루하고 낡아 있었다. 직장 근처인 선유도로 향하면서 나는 앞으로 절대로 다시는 이 너덜거림의 냄새가 밴 옷들을 사모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옷을 자주 사모으는 듯한 행위를 가급적 하지 않고 대신 하나의 옷을 사도 괜찮은 옷을 사겠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입으며 괜히 뿌듯한 기분을 느껴야지. 뭐 여전히 겨울의 괜찮은 옷들은 대체로 내 예산으로는 부족했고 그럴 때 나는 빈티지에 걸린 괜찮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아우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했다. 빈티지 옷을 처음 받아볼 땐 빈티지 특유의 냄새에 흠칫 했지만 -그래서 순간적으로 다시금 그 공포감이 밀려왔지만 세탁소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두 세 개의 큰 김장 봉투를 버릴 때 꽤 찔렸던 환경보호 자아에게도 볼 면목이 생겼다. 지금 내 돈으로 어떻게 이 브랜드의 캐시미어 100% 코트를 사겠어.


생각해보면 학교 앞에서 길어야 1년 정도의 월세 계약으로 머물렀다 떠나는 집들에게 크게 정을 줄 겨를도 없었다. 잦은 이사를 위해 집에 최대한 짐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내 취향이 오롯하게 담긴 공간이랄 게 딱히 없었고 함께 사는 친구와 취향이 섞이기 마련이었다. 집에 필요한 집기나 물건들은 당연히 최저가 검색으로 구매했다. 아름답고 비싼 것이 아니라 당장의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집을 채워나갔다.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게 되는 게 습관이 됐다.


2019년 강서구의 집으로 이사 오기 얼마 전 이 브런치 글을 우연히 읽게 됐다. 마치 옷에 대해 결심을 만들었던 것처럼 나는 집에 대한 결심을 만들었다. 강서구의 집으로 이사하던 날부터 집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갖고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고 내 취향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로 집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을 빼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의 거실에서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경험 하게 됐다. 주말에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을 하고 가끔은 일을 하기도 하는데 거실이든 침실이든 어디든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로 정돈돼 있다. 마치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인스타 스토리에 담듯 나는 내 집 구석구석을 종종 스토리에 담는다.


"매일 쓰는 것이 예뻐야 해. 매일 쓰는 것이 아름다워야 일상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언제까지 에쁜 카페나 근사한 숙소로, 비일상으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일상을 가꿔야 한다 (...)
나는 이제껏 반대로 살았다. '어디에 돈을 쓸 것인가' 결정해야 할 때 사는 즉시 최대의 만족을 주는 것만 골라왔다. 질 좋은 이불을 사는 대신 하룻밤에 5만원이 넘는 숙소로 가는 편을 택했다. 꼬질꼬질한 자취방에서 이불 하나 바꿔봐야 티도 안 날 테니까."


모든 구질한 물건을 싹 다 버리고 근사한 삶으로 건너가리라 다짐한 이 브런치 작가는 이번 생엔 그렇지 못할 것임으로 대신 마음에 들고 약간 비싼 컵을 발견했을 때 '매일 쓸 물건'이고 내 마음에 들 정도로 충분히 아름다우면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보는 거니까, 하루에 그 커피 한 잔만으로도 커피를 담은 아름다운 컵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일상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것은 늘 비쌀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에겐 의미 없을 공간을 돈 주고 산다는 인스타그램의 요즘 것들 중 하나이겠지만. 나 스스로에게 어떤 남루한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한 옷과 집의 이야기는 남에게 어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청년의 시기에 꽤 큰 고민의 흔적으로도 남게 됐다. 몇 년 뒤에는 이런 글이, 그리고 이 시절 내가 산 옷들이라든가 물건이라든가 이런 것들의 가격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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