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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ug 31. 2023

태어나 처음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다!

나만의 균형점을 찾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일 때까지 기억나는 최다 반복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아빠의 물구나무서기 강연이었다. 전해 듣기로 아빠는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쯤부터 물구나무서기를 가르쳤다. 아빠는 바닥에 엎드린 다음 두 손을 깍지 낀 상태로 양 팔로 삼각형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깍지 아래 바닥을 뚫릴 듯이 째려보며 내게 말했다.


“봐래이. 일단 삼각형을 만든 다음에 이래 시선을 여 두고 머리를 삼각형 맨 위 꼭짓점으로 만든다 생각해라“.


아빠는 여러 번 시범을 보였다. 아빠는 물구나무서기를 잘했다. 매번 성공했다. 키도 큰데 그 길고 무거운 다리를 죽죽 잘도 올렸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서 중심을 오래도 잡았다. 이건 확실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왠지 물구나무서기를 한 다음 팔로 걸어 다니기도 했던 거 같다(아님 말고). 무튼 아빠는 내게 물구나무서기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지만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혹시나 넘어갈까 봐 너무 무서워 다리를 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짧뚱한 다리를 깔짝깔짝 대며 올려 찰 수밖에 없었고 그건 물구나무서기의 실패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었다.


보다 못한 아빠는 벽 앞에 나를 세웠다. 양손을 깍지 끼고 그 깍지를 벽 앞에 붙이게 했다. 그런 다음 다시 바닥을 째려보게 했고...


힘차게 다리를 올려 쳐 겨우 서기도 했지만 그건 너무나 그저 벽에 기대 선 것일 뿐이었다. 애초에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위한 나만의 균형점을 찾지 못했다. 균형점을 모른 채 그저 다리만 쳐 올리니 온몸이 기우뚱 흔들리고 균형은 더더욱 멀어졌다. 그러니 아빠의 하드 트레이닝에도 물구나무서기를 단 한 번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지난달 요가원 선생님들이 함께 커리큘럼이라도 짠 듯이 매 수련마다 정점 아사나가 시르사사나, 일명 ‘머리서기’였다. 하타에서도 빈야사에서도 머리서기를 위한 여러 아사나들이 이어졌다. 처음 머리서기를 본 날, 나는 당연히 못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못했다. 잘 못했다가 아니라 불가능이었다. 앞과 옆 사람들이 척척 거꾸로 서서 명상을 하는 동안 감히 시도해 볼 생각도 못한 채 그전 단계의 아사나에만 집중했다.


한 번은 선생님이 잡아 주기도 했고 또 한 번은 다른 선생님이 벽에 몸을 붙이고 해 보라고 시켰다. 두 번 다 실패했다. 선생님이 잡아줘서 성공한 머리서기는 마치 어린 시절 벽에 기대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한 것과 같았다. 아무 소용이 없는 물구나무서기였다. 게다가 벽에 몸을 붙이고 도전한 날은 아예 기대 서지도 못했다. 머리서기를 할 수 있는 그 무언가. 그 뭔가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하타 요가에서는 까마귀 자세(바카사나)가 정점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 바카사나를 위해 선생님은 다운독 전후에서 최대한 배에 힘을 많이 주는 아사나를 제시했다. 계속해서 바카사나를 위한 수련이 이어졌다. 바카사나는 내게 쉽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자세를 해냈다. 세 번 정도 성공한 다음 아기 자세로 쉬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머리서기를 해야 된단다. 어차피 나는 할 줄 모르니까 그전 자세나 연습해야지, 하며 선생님 큐잉에 따랐다.


테이블 자세에서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깍지를 낀다. 그 깍지에 정수리와 이마 사이를 껴 넣는다. 아빠가 그렇게나 강조한 삼각형이다. 다만 여기서부터 선생님은 다르다. 아빠는 삼각형에서 발을 차 올리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최대한 발 뒤꿈치를 들고 배에 힘을 꼭 준 다음 허벅지가 마치 배에 붙을 것처럼 다리를 가까이 갖고 오란다. 그런 다음 한 다리를 바닥에서 조금 뗀 다음 굽힌 채로 배에 더 가깝게 오도록 배를 짜낸다. 이 자세만으로도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다.


어라..? 그런데 오늘 느낌이 좀 이상하다.


다리 한쪽을 들어 배를 짜내는데 왠지 가뿐하다. 이 상태로라면 한쪽 다리까지 뗄 수 있을 것만 같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몸이 이미 알고 있는 느낌이 왔다. 들고 있던 다리를 더 강하게 배 쪽으로 당긴 다음 다른 한쪽 다리를 조금씩 떼 본다. 어린 시절 열심히 차 올린 자세가 아니라, 아주 무겁고 느리게 발을 뗀다. 어? 발이 허공에 떴다. 어? 왠지 다리를 쭉 펼 수도 있을 거 같아. 머리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다리는 이미 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그 무언가, 나만의 균형점을 찾은 것이다.


한.. 3초 정도였나? 5초였나. 순식간에 뒤쪽으로 넘어갔다. 그 덕에 앞에서 수련하던 분의 매트에도 조금 침범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기뻤다. 그 어떤 아사나를 성공했을 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뿌듯했다.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자세라 그렇고, 그런 자세들 가운데서도 뭐랄까 내겐 땅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비-정상적인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머리를 위에 두고 발로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이 그걸 뒤집어 서 세상을 본다니.




요가원에서 돌아오는 길. 성공한 것 기쁜데 그건 그렇고 문득 아빠가 왜 그렇게 어릴 때 물구나무서기를 시켰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 아빠. 어릴 때 물구나무서기 와 그래 마이 시켰는데?

“중심을 잘 잡으라고 시켰지“


그렇단다. 중심을 잘 잡으라고 시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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