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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Sep 24. 2023

아이고 내가 또 왜 그랬을까..

술주정과 발전에 대한 잡담

금요일 만취해 기억을 거의 잃었다. 최근 몇 달간 술을 끊었다가 요즘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내 주량을 까먹어버린 건지, 아니면 예전만큼 술을 잘 못 마시게 된 건지 알딸딸하다는 감각도 오기 전에 훅 취해버렸다.


조금 알딸딸하게 취할 땐 조절을 하기 마련이고 취하긴 취해도 대부분은 즐겁게 마무리가 되는데, 이렇게 훅 취하는 날은 정말 위험하다. 기억도 증발된 상태에서 무얼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길이 없고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난다. 위험하다. 또 다른 자아일지라도 그것 또한 결국 나이므로 모든 것의 책임은 맨 정신의 내가 져야 한다. 문제는 그 자아는 꼭 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더 무서운 건 자아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인데 한때는 화를 그렇게 냈다. 어제 만난 친구 말론 우리는 지금 화가 더 많은데도 술을 마시면 지금보다 그때 화를 훨씬 더 많이 낸 거 같다고 했다. 동의. 점점 더 어른이 되면서 누적된 화는 많은데 그만큼 참을성도 늘어난 건지, 아니면 친구 말마따나 어렸을 때 더 불 같아서 그랬던지 아무튼 걔나 나나 한때는 술만 마시면 화를 그렇게 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싸우곤 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지나고서의 술 자아는 점점 유해지고 흥이 넘쳐 술만 마시면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다 결국 일어나 춤을 추곤 했다. 그래서 그때의 사람들은 나랑 술을 마시면 취한 날 보고 즐거워했다. 야 쟤 또 춤춘다. 찰칵찰칵. 그때 술을 자주 함께 마신 사람들의 핸드폰엔 나의 춤추는 영상이 많다.


이번엔...... 또 다른 기가 막힌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 모두 높은 편이다. 오히려 실력 없이 자존감만 높고 오만하고 재수 없는 에고 큰 사람으로 늙어가지 않게 노력하는 편인데, 유독 내가 자존감이 낮아질 땐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할 때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내 손으로 잃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사실상 동일한 실수를 일생에 거쳐 계속해서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게 없다.


실수를 저지르고 다음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괜한 이야기를 말아야지 싶다가도 실수를 토해내고 싶은 욕망이 자꾸만 들고 입이 간질간질해 결국 실토했다. 친구들은 바로 사과를 하기도 했고 그 정도 실수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으나 자괴감을 떨치긴 쉽지 않다. 그래도 친구의 말이 위안이 됐다. 다른 주제에서 나온 이야기이긴 했는데 - 그래도 우린 운이 좋은 편이고 아직까진 바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실수만 해왔다고, 언제든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10년 전의 나는 서른서너 살 정도의 나는 아주 멋진 어른일 거라 상상해 왔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술 먹고 또 실수를 하는 어른일 뿐이라는 점이 날 괴롭게 한다. 더 두려운 것은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이럴 거라는 강한 예감에서 오는 한심함 때문이다. 그래. 친구 말처럼 바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일 때 바로 잡아야지. 발전해야지. 지금부터라도 안 그러면 되니까.........


물론 이 이야기를 우린 술을 마시면서 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다음 날 술이 또 들어가더라. 오랜만에 나와 즐겁게 술을 마시는 시간을 기대했을 친구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술은 죄가 없다. 술에게 먹히는 술 자아가 문제지. 그래서 이번엔 아주 자중하며 천천히 술을 음미했다. 그래. 나는 만취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적당히 먹는 술을 좋아하는 거야. 그 마음으로 3차까지 버텨냈다. 하나도 취기 없이 멀쩡히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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