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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Aug 18. 2022

침묵의 비밀

사춘기 아이들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사춘기가 시작되면 말수가 줄어들고, 그 해맑던 수다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끄럽던 독서수업도 확연히 양상이 달라집니다. 시니컬해지고 뾰족해진 아이들. 내 생각을 말하기도 싫고, 남의 생각을 듣기도 싫은가 봅니다. 첫째의 경우 이 시기가 6학년 2학기 말쯤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둘째는 조금 더 빨리 시작된 것 같고요. 아이마다 편차가 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면 이 특징이 좀 더 가속화되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동화를 믿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람이 동화책 속에서처럼 선하지 않을 수 있고, 그 결말도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음을, 또 그 과정도 그렇게 천진난만한 전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실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보통의 사춘기라 일컬어지는 시기가 오기도 전에 미리 이 삶의 진실, 인간과 세상을 둘러싼 어둠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동화는 새빨간 거짓말과 같습니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천진난만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이 너무 불편합니다. 어른들을 통해서 강요당한 비극이 아이들은 소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겪게 되는 불화, 불평등, 불공정, 부조리 등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프고 시립니다.


독서수업을 하다 보면 마음 저 아래 아픔이 가라앉아 있는 아이들이 보이고, 또 그걸 보이기 싫어서 독서수업에 안 보내시는 부모님도 간혹 계십니다. 아이의 그늘 뒤엔 부모님의 아픔과 사연이 늘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만일 어린 시절 책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님으로 인한 아픔을 털어놓고 카운슬링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마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의 마음가짐이나 시선, 혹은 방향 설정에 적어도 지혜를 가진 어른의 도움은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또 선생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라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며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게 전부인데 말입니다.  


조금은 밝게 자란 아이들은 사춘기에 들어서고 나서 어릴 적 친구들에게 왜 자신이 알 수 없었던 그늘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런 말들을 했었는지 뒤늦게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많이 좋아하던 단짝 친구에겐 어머니가 안 계셨는데, 저는 ‘어머니 부재’의 의미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이 다 들어서 어머니와 사별한 저는 지금도 엄마가 없어서 이렇게 서러운 게 많은 데 어린 시절 내 친구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이제야 그 생각에 미칩니다. 참, 철은 늦게도 드는 가 봅니다.


요즘은 사춘기 아이들 각자의 현실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다 함께 겪게 되는 공통의 현실이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SNS나 게임 등 아이들이 즐기는 미디어 속에는 아직은 이해하거나 소화할 수 없는 적나라한 현실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미디어를 통해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이 누려야 할 천진난만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맛보지 못하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 시기는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친구들의 영향을 진짜 많이 받고, 책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부모는 처음 만나는 아이의 사춘기에 그 누구보다도 당혹스럽습니다. 예전에는 부모 말을 제법 듣던 아이도, 부모의 말은커녕 말투도 싫고, 부모의 잔소리는커녕 부모의 헛기침도 싫은가 봅니다. 부모의 장단점을 조금은 감사하기도 참아주기도 하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단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부모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던 부분까지도 싫어합니다.


이럴 때는 아이와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 상책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변화도 놀랍고, 그 아이의 변화를 추동한 미디어나 친구들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우리 아이는 저러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이들은 친구나 스마트폰으로 도망갑니다. 부모는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책’의 효능감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선 아이에게 ‘독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자유를 요구하는데, 그 ‘자유’를 독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책’을 선택할 자유, 선택하지 않을 자유, ‘말’을 할 자유, 안 할 자유, ‘글’을 쓸 자유, 쓰지 않을 자유. 참 많은 자유를 아이들은 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유를 만끽할 때에야,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혹시, 이 책들 중에 네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이 있을까?”

 

“...”

 

“혹시, 이 책 너희 또래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한 번 읽어볼래?”

 

“...”


혼자 있기를 즐기는 아이 방에 슬쩍 넣어줍니다.


독서발달단계로 보면 ‘사춘기’는 아직 추상적인 사고는 힘들지만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은 무럭무럭 자라는 시기라고 정의 내려집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나 사회 전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고, 유치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니, 사실 초등 때 읽던 책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 인물들, 사건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첫째 아이의 경우에는 슬쩍 밀어 넣었던 책들에 손도 안 댈 것 같았는데, 하나씩 읽었다고 말할 때 참 대견해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부모가 느끼는 대견함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사춘기 시절,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책들을 읽는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어떤 날은 문학책, 어떤 날은 지식책을 집어 들고 조금씩이라도 읽어 내려가는 자신이 싫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침묵하는 아이에게 책이 해 준 것, 아니 책의 저자들이 말을 걸어준 것이 새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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