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독서일기 7

by 이성주

‘행복한 그림자의 춤’(앨리스 먼로/뿔출판사)를 읽고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작가 앨리스 먼로의 1968년도 작품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지인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책을 구입한지 일 년 만에 다시 들어보는 책이다. 어떤 책은 구입하고 바로 읽게 되지만 어떤 책은 뜸을 들이듯이 기다렸다가 읽게 된다. 책과 나와의 인연이 쉽게 맺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다. 그렇지 않은 책이 이 작품집 같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내겐 그다지 큰 감흥이 없다. 그녀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감동이 더 커서였을까. 특히 그 책에서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결말의 허를 찌르는 곳에서 통쾌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서 작가의 역량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겠다. 어쩌면 사방팔방으로 막힌 듯 지금의 내 심정과 비슷해서였을까.


모두 15편의 단편이 편재되어 있는 소설집은 우리 일상에서의 아이러니와 위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처음에 언급한대로 반전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없다. 그래서 밋밋하게 느껴져서 감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그녀의 작품이 노벨상까지 수상한 것은 분명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덮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이런 일상 속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삶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내가 보낸 일상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비밀들, 너무나 속물적이어서 혹은 내게서 발현되는 타인을 바라보는 또는 타인이 내게서 발견하게 되는 본능과 본성들이 이 작품 속에 들어있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인 ‘작업실’을 읽어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집을 놔두고 시내의 공간을 선택하는 그녀와 그녀의 작업실을 대여해준 건물주의 뻔뻔하고도 참을 수 없는 관음증과 간섭이 여성 작가가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남자들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집요하고 끈적거리고 폭력적이다. 겨우 얻은 공간에서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위안은 곧 폭력적인 관음증 때문에 침범 당한다. 그녀는 이름을 얻지도 못했고 책 한 권 낸 적도 없지만 자기 공간을 갖고 작품을 쓰고 싶다. 이미 ‘19호실로 가다’에서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자기 이름으로 존재하고픈 욕망이라는 것을 드러냈었다. 아마도 이건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여성의 방을 궁금해 하는 것은 여성을 누군가의 관음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남성들의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그녀는 작업실을 포기하지만 스스로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남성을 끊어내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여성이 남성의 권력에 기대어 남성이 누리는 많은 혜택을 함께 누리는 것을 현명하고 똑똑하다 착각(?)하는 동안 여성이 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외치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지금 여성들이 누리는 혜택은 없었을 것이다.


표제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마살레스 선생님의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연주회에 이제는 늙은 마살레스 선생님의 제자들의 연주회가 열린다. 늘 비슷한 형태의 연주회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날의 연주회는 다른 날과 다르다. 그건 마살레스 선생님의 새로운 학생들이 평범한 그 마을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감동을 주는 연주, 몰입하게 하는 연주, 마살레스 선생님의 특별한 연주회에서 아무런 편견 없이 미소를 띠고 연주회를 감상하는 사람은 선생님뿐이다. 그리고 특별한 연주가 시작된다. 사람들 가슴에 이전에 잃어버렸던 감성을 일깨우는 연주, 연주자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연주하는 곡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그것은 편견을 벗겨내는 순수한 예술에의 열정이다.


‘붉은 드레스’는 엄마가 만들어준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붉은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댄스파티에 참석한다. 누군가 춤을 함께 추자고 청해주길 바라지만 아무도 그러질 않자 무색해진 나는 메리 포춘이 댄스장을 빠져나가자고 제안하자 무색해진 마음을 숨기고 그녀를 따라나서려고 한다. 그러자 누군가 댄스를 청하자 나는 그만 댄스플로어로 나가고 그 순간까지 갖고 있었던 감정으로부터 해방됨을 느낀다. 남자애를 기다리던 그리고 남자애들로부터 댄스 신청을 받고 플로어로 나간 다른 애들과 똑같은 표정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만들어진 그날의 기억이 나를 평범하게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을까.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가슴 속에 품은 바람들은 자신이 다소 속물처럼 보여도 남들과 비교하여 열등해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리라.


‘주일 오후’는 게닛 부인의 집에서 하녀 일을 하는 앨바가 게닛 부인의 섬에 있는 별장에 갈 것을 꿈꾼다. 자신이 하는 일의 비루함을 잠시 잊게 하는 특별한 계획, 그러나 게닛 부인은 그녀가 하녀임을 자꾸만 일깨운다. 앨바는 ‘리어왕’을 읽는 평범한 하녀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녀의 위치가 게닛 부인과 손님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앨바는 우울해진다. 어쩌면 그게 보통의 우리들이 느끼는 속물적인 근성과 비슷한 게 아닐까.

‘나비의 나날’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마이라에게 나는 그냥 우연히 샀던 크래커 속에 들어있던 상품을 선물로 주었다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이라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주인공의 마음이 담겼다. 마이라가 아파 학교에 오지 않자 다 함께 방문해서 그녀의 수척한 얼굴을 대하고 그럼에도 내가 주었던 하찮은 물건에 의미를 두고 감사해하는 것을 보고 나는 어쩔줄 모른다. 아픈 마이라에게 친구들이 준 선물은 내가 주었던 것보다 더 값이 나가는 것이고 내 선물에 감사했던 마이라가 그 선물들을 주었을 때의 난감함이라니. 이렇듯 앨리스 먼로의 소설 속에는 커다란 사건이 없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와 싸우는 갖가지 감정들이 결국은 나도 그렇고 그런 다른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내가 인간이면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이다. 욕망은 크지 않다. 남들과 다르다고 아무리 노력해 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일들은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안타깝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어도 금세 드러나는 우리들의 속물근성이나 뻔뻔함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난처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이 아닌가. 적절히 나를 속이기도 하고 타인을 속이기도 하고 내가 혹은 타인이 베푸는 선의에 감사하지만 그 속내까지는 알 수 없다. 내 속을 내가 알 수 없듯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인간을 깊이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굉장히 쉽게 써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깊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책 속에 담겨있는 소설들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 아무런 것이 남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을 짓누르는 슬픔도 함께 느낀다. 이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출판사에서 수년간 퇴짜를 맞았다는데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녀의 소설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먹먹하다. 그녀 소설의 힘이다.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나 독후감을 쓰면서 다시 그녀의 책을 훑어본다. 열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훑어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앨리스 먼로의 힘이리라.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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