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신발

by 이성주



유난히 신경 쓰이는 풍경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혹은 운전을 하다가 보게 되는 신발들, 주인을 잃은 신발들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는지요. 발과 한 몸이 되어 남의 눈에 띠지 않는 신발들은 주인을 잃은 다음에야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줘요. 한 짝밖에 남지 않은 슬리퍼라든가 나란히 모아놓은 구두나 운동화 같은.


오늘도 오는 길에 도로 위에 널브러진 슬리퍼 한 짝을 보았습니다. 나는 어떠한 정보도 없는데 무작장 신발의 주인의 안위를 걱정했어요. 혹시 교통사고라도 난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도로 한복판에 한 짝만 놓여 있는 건 아슬아슬합니다. 그 위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요. 하루종일 사람들의 체중을 버텨내고 집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신발이 이토록 많은 말을 할 줄 몰랐을 거예요. 언젠가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턱에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어요. 꼭 누군가가 일부러 벗어놓고 간 것처럼 가지런하게요. 운동화는 그 신발 주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어요. 발크기를 보고 키를 가늠하게 할 수 있었고 낡은 모습에서 오랫동안 아껴 신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회색에 가깝지만 너무나 깨끗해서 정갈한 느낌을 받았더랬죠.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매듭을 묶은 형태를 보니 여자는 아닌 것 같아. 여자라면 가박증이 없는 사람일 거고. 신발코에 흙색이 배어든 걸 보면 흙이 묻었다 떨어진 증거니 비오는 날 신고 다닌 모양이야. 뒤꿈치가 접혀 있지 않은 걸 보면 신발을 함부로 신는 사람이 아닐 거야. 신발 안쪽으로 보니 낡아 헝겊이 닳아 있어. 아마도 오래 신은 모양이야. 안에 테이프까지 붙어 있네. 정말 알뜰하게 신었구나. 어쩌다 이 길에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갔을까.


사진을 찍다 보니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떠올랐어요. 가난했던 한 사내가 부동산 사건에 연루되고 나락으로 떨어진 뒤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화자인 '나'에게 강도가 되어 나타나지요. 하지만 어설픈 행위로 결국 정체를 들키고 도망쳐 버린 한심한 인간, 그렇게 아끼던 구두만 남기고 사라진 사내의 슬픈 이야기였어요. 신발은 주인이 사라지고 나면 슬퍼보여요. 버려진 거니까요. 무게를 이고 있을 때 어쩌면 신발은 가장 행복한 때일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도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을 때가 행복한 건 아닐까요? 가끔 너무 많은 걸 가진 사람이 무력해지는 걸 보면 더 그래요. 삶의 무게가 결국 우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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