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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포기한 간헐적 단식

by Helen

(수정하려다 삭제되어서 다시 올려요 흑흑)


지난 구정 때 폭식을 한 후 2킬로 정도 체중이 늘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살을 뺄 수 있다고 자신하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매일 1시간씩 걷기, 채소 많이 먹기 등 늘 해왔던 생활방식을 유지하면 조금씩 빠지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같은 방법을 쓰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었던 것. 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체중계에 올라갈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얼마 전 강의를 앞두고 평소 입던 강의복(?)을 꺼냈다. 강의복이라고 해봐야 멋진 정장 같은 건 아니고 청바지에 셔츠, 재킷 정도인데, 문제는 바지 단추가 아슬아슬하게 잠겼다는 것! 억지로 낑겨 넣으니 옷 태가 날 리가 없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프로답지 않았다. 다이어트의 결심을 굳히는 것은 체중계의 숫자가 아니라 옷 입을 때의 뻑뻑한 느낌과 거울을 봤을 때의 좌절감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몇 달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효과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하고 몇 가지 방법과 주의 사항을 확인한 뒤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굶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침 굶는 것쯤이야 별거 아니라고 얕봤는데...


딱 1주일 간헐적 단신을 한 결과 체중은 조금 줄었지만 줄어든 체중에 비해 희생된 것이 너무 많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던 사람이 아침을 안 먹으니 오전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활력이 떨어졌다. 진공청소기 들 힘은커녕 양치질을 할 힘도 없었다. 고양이들이 놀아달라고 해도 모른 척하면서 언제 12시가 되나 벽시계만 쳐다보며 누워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아침마다 후련하게 화장실을 가곤 했는데 오후 늦은 시간에 가게 되니 일상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허탈감마저 밀려왔다. (화장실은 정말 소중하다)


한 끼를 굶고 폭식만 하지 않으면 확실히 섭취 칼로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오전 시간에 아무것도 못 하고 널브러져 있으니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상을 꼼꼼히 분석해 본 결과 나의 경우 점심 식사 후 커피와 함께 먹는 땅콩 초콜릿만 안 먹어도, 샐러드에 넣어서 먹거나 그릭요거트를 먹을 때 곁들여 먹는 아몬드의 개수만 줄여도, 선물로 들어오는 떡, 빵, 과자를 돌 같이 보기만 해도 삼시 세끼 챙겨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늘 아침, 일주일 만에 아침을 먹었다. 고구마 100그램, 바나나 50그램, 무가당 그릭요거트 80그램, 드립커피 250밀리. 전에 먹던 아침보다 훨씬 낮은 칼로리의 식단이었지만 배가 부른 느낌이 들면서 혈관 구석구석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 에너지로 레인지 후드를 떼어내서 기름때를 닦았고, 세면대와 변기를 청소했고 이불커버를 벗겨내서 세탁기를 돌렸다. 고양이들 궁둥이도 토닥토닥해주었다. 녀석들의 골골대는 소리가 너무 좋다.


아, 이게 사는 거지!!! 내 몸이 말해주는 정답은, 늘 아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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