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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Mar 18. 2023

우리 그때 갑사에 왜 갔지?

세 여자가 새해를 맞이한 방법

"우리 그때 갑사에 왜 갔지?"


오랫동안 나도 궁금했던 것을 마침내 Y가 말로 꺼냈다. K도 맞장구를 치며 "그래그래 우리 그때 갑사에 왜 간 거야?"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K도 나 Y처럼 그날 우리가 갔던 갑사여행을 가끔 떠올렸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게 몇 년도였던 거야? 날짜는 기억나는데 연도가 기억이 안나. 기억하는 사람 있어?"


우리 세 명이 함께 갑사에 간 것은 2002년 12월 31일이었다. 무려 20년 전이다. 그 여행을 제안했던 사람은 분명 나였을 것이다. 갑사 아래에 지인의 일터가 있어서 몇 번 방문했었던 인연이 있었다. 연말에 별 할 일 없으면 갑사나 가보자 K와 Y에게 제안했던 것 같다. 세 명이 함께 여행을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목적지 공주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각자의 직장에서 퇴근 다음에 만나서 출발했던 것 같다. 당시 운전은 나만 가능했기 때문에 내 차로 이동했던 것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지인의 일터가 있는 S산장을 목표 삼아서 갔다. 그런데 12시가 다 되어 도착해서 그런지 빈 방이 하나도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소박한 S산장에 비하면 번쩍번쩍 빛이 나는 H산장이 보였다. 다행히 빈방이 있다고 하신다. 그날 사장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열쇠를 건네주시며 하셨던 말씀이 아무 계획 없이 떠났던 우리의 여정을 바꾸어 놓았다.


"내일 새벽 4시 반쯤 갑사에 가면 떡국 먹을 수 있어요. 한번 가봐요."


나는 무신론자지만 집안에는 기독교신자들이 우글거린다. K는 가톨릭신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장님의 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에 들어가 짐 풀고 쉴 생각만 했다. 온돌방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세 명이 나란히 눕고 불을 껐을 때 불교신자인 막내 Y가 "나 내일 갑사 가보고 싶은데..."라고 한다. 나와 K는 잠에 빠져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좀 일찍 일어나서 가보자..."


눈 떠 보니 4시 반. 늦었다. 양치와 세수만 대충 하고서 어두운 새벽길을 10분 정도 걸어 갑사까지 갔다. 갑사에는 이미 새해를 맞이하러 온 신도들이 모여 있어서 대낮처럼 환했다. 우리의 목표는 떡국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틈을 헤치고 들어가 떡국 배식하는 곳으로 직진했다. 이미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도 우리는 양심 없이 떡국을 주십사 했다. 아뿔싸 떡국이 떨어졌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신도들 틈에서 산장 사장님의 얼굴이 부처님 얼굴처럼 환하게 두둥실 떠올랐다. 떡국 못 먹었다고 하니 갑사 지하 쪽으로 안내해 주신다. 아마도 갑사 식당이었던 것 같은데 사장님이 주방을 향해 몇 마디 하시자 떡국 세 그릇이 쟁반에 올려져서 나왔다. 사장님은 홀연히 떠나시고 우리는 표고버섯으로 국물 맛을 낸 뜨끈한 떡국으로 몸을 녹였다.


거기까지만이었다 해도 그 여행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여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떡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오니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 때보다 더 많은 신도들이 갑사 정원 가득 모여 있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계신 분들이 보였고 손에 손전등을 들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세명은 그 무리에 휩쓸리게 되었다. 아니 휩쓸렸다기보다는 그 상황을 외면하고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 역행해서 산 아래로 가기에는 왠지 양심에 가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놈의 무료 떡국이 우리를 붙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고행이라더니 그날 우리는 아무 장비 없이 계룡산 야간 산행을 하는 고행을 체험했다. 그나마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의지할 불빛이 없어서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주변 신도분들의 불빛에 눈치껏 의지하면서 겨우겨우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고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르는 산행을 이어갔다. 어느새 우리 세명은 다 흩어져 있었다. 각자 잘 따라오고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한겨울이었지만 온몸에서 땀이 나고 숨이 가빴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두 시간을 걸었을까.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움직이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발을 헛디딜까 봐 바닥만 보고 걷다가 모처럼 허리를 펴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곳은 산 중턱에 있는 평지고 산너머 멀리에서 벌건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덧 목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반야심경을 외는 신도들의 소리가 계룡산에 퍼져나갔다. 내 근처에 함께 서 있던 Y도 반야심경을 외우기 시작했고 반야심경을 모르는 K와 나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그날 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숨은 가쁜데 주변에 서 있는 낯선 사람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었고 떠오르는 해는 처절하게 빨갰다. 그중 무엇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고생했다, 올해도 잘 살아내 보자 말했던 것 같다. 집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보다 더 경건하고도 간절하게.


법회가 모두 끝나니 주변은 완전히 환해져 있었고 우리 세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룡산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땀을 흠뻑 흘린 탓에 오자마자 차례대로 샤워를 했다. 법회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서로 말할 기운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침이었지만 밤에 잠을 자듯 잠옷으로 갈아입고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에 허리를 지지며 다들 기절한 듯이 잠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Y가 "우리 그때 갑사에 왜 갔지?" 했던 그 여행은 렇게 시작되고 렇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여행을 언제 갔는지 연도가 항상 궁금했는데 K에 따르면 2002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K에 따르면 여행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나는 짜장면을 먹은 기억은 없었지만 그 중식당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신기했던 것은 그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계룡산 법회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다. 여태 나만 경건함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교신자인 Y가 반야심경을 외우는 모습을 얼핏 보기는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Y와 K는 그저 고생했던 여행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Y도 K도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을 나만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고 특히 해돋이를 보면서 체험한 법회는 각자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지도 앱을 찾아보니 H산장도 중식당도 아직 영업 중이다. 우리 다시 한번 가볼까? 이번에는 작은 손전등 하나 챙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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