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일상 ep.5
나의 불안과 집착이 종기가 되어 돋아날 때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을 먹어도 쉬이 잦아들지 않는 두드러기가 재발했다. 일 년에 4번, 팔과 다리, 몸통 할 것 없이 전신에 퍼지는 두드러기는 특히 밤이 되면 몸에 열이 오르면서 그 가려움이 극에 달해 잠을 설치기 일쑤다.
처음에는 음식 알레르기나, 접촉성 피부염이라 진단받고 식단을 살피고 몸에 닿는 옷가지도 유심히 살폈지만,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처방받은 알레르기약이나 피부염 연고에도 증상이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재발하는 시기에서 해답을 찾았다. 늦봄,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7월, 가을 초입과 겨울 방학 직전. 보통 국내 중, 고등학교의 시험이 실시되는 시기이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중간, 기말고사 대비를 위해 시험지 작업을 하고 보강이 연달아 잡히는 무렵 즈음에 나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그로 인한 신경 자극이 나의 뇌에 과부하를 초래하였다. 자율 신경과민반응과 스트레스 호르몬 과다분비로 이어지면서 발진과 같은 피부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라 했다. 이런 증상이 생겨난 것은 대략 10년쯤 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시간 중 해외에 거주하며 다른 일을 했던 시기에는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내가 했던 일은 나의 노동과 노력의 대부분이 일의 성과에 착실하게 반영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결과에 미치는 변수가 많다. 그런 이유로 나의 불안이 종종 겉잡을 수없이 커질 때가 많다. 아이들의 시험 결과가 곧,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한 절대평가인 것 같아 부담감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자려고 누웠다가 눈이 떠진다. ‘내가 이 문법 포인트를 언급했던가? 아이들이 자주 틀리는 부분을 충분히 복습시킨 게 맞을까? 혹시 이번 시험에는 전혀 다른 유형이 나오는 건 아닌가?’ 슬그머니 침대에서 빠져나와 다시 시험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20문 제 만 만들어야지!’ 했던 것이 자꾸만 늘어 작업이 밤늦도록 이어진다. 시험지 작업이 끝나면 수업별로 놓치지 말아야 할 내용을 집착적으로 빼곡히 메모한다. 불안을 겨우 잠재우고 다시 침대에 누우면 학년별 교과서 본문들이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오르면서 오래도록 잠들지 못한다.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나는 이런 불안과 집착을 줄일 방법을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소속이 없이 자유롭게 일하다 보니 나의 24시간은 내가 유용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짙다. 필요에 따라 잠을 줄이고 식사를 건너뛰고 주말을 포기하면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간단하게 늘릴 수 있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만하고 퇴근하라고 종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나의 불안과 집착이 발동하면 언제 끝은 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 스트레스성 발진을 겪으면서 시험 기간이 끝나면 짧은 여행을 가거나 며칠 수업을 쉬면서 회복을 꾀해보기도 했지만, 휴식의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고 무한정 쉴 수 없는 것이 또 프리랜서 아니겠는가!
올해는 두드러기가 많이 호전되었다. 여전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이곳저곳 발진이 올라오지만 미친 듯 가려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던 작년과는 확실히 다르다. 병증이 나아진 이유를 나는 운동에서 찾았다. 사실 운동이라면 과거에도 꾸준히 해왔는데, 대게는 헬스나 홈트, 달리기, 자전거 라이딩처럼 개인 운동뿐이었다. 주로 혼자 운동하던 그 시절, 체력을 보강하고 기분전환을 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 횟수나 운동지속 시간에 대한 나의 집착적 기질을 벗어날 수 없었음을 고백해 본다. 이제는 주로 여럿이 함께하는 운동을 한다. 축구나 풋살, 배드민턴도 그렇고 자전거 라이딩도 친구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운동하는 동안에는 마음껏 몰입했다 미련 없이 다 같이 운동을 마치는 일. 운동 자체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긴장을 풀고 즐기는 것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시험 기간만 되면 찾아오는 완벽함에 대한 나의 집착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 경기 중에는 최선을 다해 땀을 흘리다가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몰입의 시간이 끝났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내려놓기를 이제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시험 기간이 돌아와도 두드러기가 나지 않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