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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Oct 21. 2016

학살의 정당성?

전쟁, 우리 안의 괴물을 불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

독일 드레스덴, 프라하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거리다.

덕분에 하루 코스로 갔다 올 수 있다. '독일? 가깝고 국경 넘으면 또 다르겠지'라며 다녀왔다.


가기 전에 찾은 드레스덴에 대한 정보는 간략한 지역 설명, 교통편, 식사할 만한 곳 정도였다.

'독일의 피렌체라 불리며 특히, 엘베 강변의 브륄의 테라쎄는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린다. 작센 왕조의 예술적이고 호화스러운 수도로 2차 대전에 폭격으로 무너진 후 복구된 곳' 간략한 설명이다.


독일의 피렌체? 유럽의 발코니? 이쁘겠네. 2차 대전 폭격에 복구된 곳? 유럽의 1,2차 내전에 폭격된 곳은 많았으니 그중 하나겠지. 그래도 복구를 했나 보다. 가기 전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갔다 온 후 '굳이 찾아서 갈 필요 없겠다'였다. 누구는 건축물이 멋있다고 하던데 내 무지한 시각에서 보면 넓기만 한 밋밋한 궁전, 유럽의 발코니라고 이름 붙인 곳은 평범한 강변이었으니.


그렇게 그냥 프라하 여행 중 잠시 다녀온 곳으로 잊혔다. 여행이 끝나고 한참 후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읽기 전까지.


'제5도살장'을 쓴 1968년이 되어서야 나는 드레스덴 폭격을 묘사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드레스덴 폭격은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이었다. 물론 아우슈비츠의 참상도 알지만, 대학살이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에서는 약 십삼만 오천 명의 사람이 영국군의 폭격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그것은 정말로 터무니없고 무의미한 파괴였다.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물론 우리가 아닌 영국인의 잔학 행위였다. 영국은 야간에 폭격기를 동원해 신종 소이탄으로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결과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전쟁포로를 제외하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검고 딱딱한 재로 변했다. 그것은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군사적 실험이었다.

- 나라 없는 사람 | 커트 보네거트 -


드레스덴? 학살? 그냥 전쟁 중 폭격으로 무너진 것들 아니고? 이런 생각들로 드레스덴 폭격을 찾아봤더랬다.

정당성이 의심스럽게 폭격을 퍼부어진 곳은 외곽에 위치한 군사/산업 시설이 아니고 민간인 거주 지역이었다. 더군다나 폭격이 이루어진 때는 독일의 패전이 확실해진 전쟁 마지막이었다.

1차 폭격으로 건물 외벽을 날리고 2차로 소이탄을 들이부어 도시를 수백도 넘는 화염으로 태운 거다. 살아 있던 마지막 그 자세 그대로 태워진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이렇게 지시하고 실행한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진다. 선제공격받은 자의 정당성을 앞세워 자행했다고 하기엔 너무 처참하다. 이 폭격의 지휘 수뇌부인 아서 해리스는 런던 한 교회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준남작의 작위를 받고 '아서 해리스 경'이 되셨다. 아래는 그 사람의 인터뷰다.


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혀졌다.
나치 전범들과 나의 차이는 그들은 감옥에 갔거나 교수형을 당한 반면 나는 자유롭다는 것뿐이다


본인도 인정했듯이 선제공격을 한 사람과 보복 대응을 한 사람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여기엔 내 편과 남의 편을 갈라 선악으로 분리하는 편리한 이분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어느 평론가의 말로 다시 얘기하면 '남은 단순하게 악하고 우린 복잡하게 선하지 않다. 우리 모두 복잡하게 악하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 안의 그 괴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록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기폭제인 것이다.


드레스덴 여행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폭격에서 남아 있는 잔재인 검은 돌들과 소실된 곳을 매운 하얀 돌들로 복원된 건물의 사진을 본다.

여행 중엔 이 건물을 보면서 '버리지 않고 다시 모아 복원했네. 옛 것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옛 것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죽어간 가족, 친구들의 잔재이고 기억이었던 거였다.


그리고 드레스덴에서 마지막으로 들렸던 동네 작은 축제 같던 장터가 생각났다. 그곳에 웃고 마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 후 시간이 지나 책이나 뉴스로 그곳이 호명될 때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다시 기억된다. 그러면 그곳에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바로 그때 내 안의 괴물이 잠재워질 수 있는 거다.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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