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와 파도, 그리고 비린내
바다는 오늘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밤중 내내 이어진 물결이 해변을 쓰다듬듯 오갔고, 그 끝에서 하얀 거품이 부서졌다. 하지만 새벽 공기 속에는 평소와 다른 결이 섞여 있었다. 파도의 숨결 사이로, 짠내와는 다른 금속성의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코끝에 차갑게 달라붙는 그 기운은 마치 녹슨 쇠붙이를 혀끝에 올린 듯했다.
루카는 걸음을 멈췄다.
그가 숨을 들이켰을 때, 냄새는 한층 짙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래된 부패가 남기는 묵직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전쟁터의 탄내 같은, 혹은 오래 방치된 부두 창고 안 공기 같은, 그런 기운이었다.
하늬도 이변을 감지한 듯 고개를 돌렸다.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루카, 이 냄새… 이상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작게 흘렀지만, 그 안에는 낯선 것을 향한 경계가 묻어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발자국이 사라졌던 자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 물이 스친 모래사장 한 귀퉁이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처음엔 바위 그림자가 떨어진 것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이 물에 번진 ‘어떤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색은 이미 희미하게 풀렸지만, 모래 입자 하나하나에 스며든 기운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루카는 무릎을 굽혀 손바닥으로 모래를 떠올렸다. 차가운 물기가 스며든 순간, 짭조름함과 함께 쇠맛이 손끝에 달라붙었다. 그는 손을 털었지만 냄새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멀리서,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그 안에 무언가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철컥’ 하는 짧은소리가 섞였다.
루카가 하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방금… 들었어?」
하늬는 대답 대신 시선을 바위 쪽으로 옮겼다. 동공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호기심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바위 사이에서 무언가 하얗게 반짝였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숨었다. 하늬가 한 발 다가서려 하자 루카가 팔을 붙잡았다.
「조심해.」
그의 손끝에는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파도의 물살과 시간을 맞춰 천천히 다가갔다. 발밑 모래는 점점 물을 머금었고, 파도가 세질수록 발목이 깊게 잠겼다. 모래 알갱이가 발가락 사이를 스치며 빠져나갔고, 그 아래로 물길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모든 감각을 덮어버릴 만큼, 코끝을 찌르는 냄새는 점점 강해졌다.
마침내 바위틈이 드러났다. 물이 빠져나간 그곳에서 녹이 슨 금속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 표면은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었고, 군데군데 푸른 녹이 번져 있었다. 상자의 모서리에는 각인의 일부가 남아 있었지만, 나머지는 긁혀 지워져 있었다. 그 문양은 루카가 주머니에 넣어둔 나무 조각의 무늬와 닮아 있었다.
하늬가 손을 뻗자, 상자 속에서 공기 방울이 ‘뻥’ 하고 터졌다. 동시에 비린내가 훨씬 강하게 몰려왔다. 그 냄새는 단순히 금속이 썩은 것이 아니라, 오래 방치된 무언가가 부패하며 내뿜는 숨결 같았다. 짭조름한 바다내음 속에 섞인 피비린내, 그리고 곡물 창고 속 곰팡이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듯했다.
파도가 갑자기 세게 밀려와 상자를 덮쳤다. 그리고 물이 빠져나갈 때, 상자는 마치 잡아당기는 손에 끌린 듯 바위틈 속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발목까지 찬 바닷물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채 옷자락을 적셨다.
남은 자리는 검게 물든 모래뿐이었다. 그 위로 작은 조개껍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그 표면에도 희미한 녹빛 얼룩이 번져 있었다.
하늬는 숨을 몰아쉬었다.
「루카… 이건 우연이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낮았지만, 확신이 섞여 있었다.
루카는 대답 대신 나무 조각을 꺼냈다. 상자에 새겨져 있던 각인의 곡선과 나무 조각의 무늬가, 마치 원래 한 몸이었다는 듯 정확히 이어졌다.
멀리서 다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물결 사이로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 돌려놔.」
차갑고 낮은 울림이었다.
하늬가 그 말을 이해했는지,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루카의 손끝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허리께로 차오른 파도가 거센 힘으로 그들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모래 밑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