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발자국
새벽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다는 밤새 가만히 숨을 고른 듯, 잔잔한 호흡으로 해변을 어루만졌다. 파도의 입김이 모래 위를 스치고, 거품이 부서지며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 위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자, 해변은 마치 긴 이야기를 덮어버린 책처럼 조용히 닫혔다.
하늘은 아직 색을 고르지 못했다. 남은 별빛이 흐릿하게 깔린 어둠 위로, 옅은 회색과 푸른빛, 그리고 보랏빛 끝자락이 겹겹이 쌓였다. 그 위에 아주 미세한 분홍이 번져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밤의 잔향과 낮의 약속이 함께 섞여 있었다.
루카와 하늬가 피워두었던 모닥불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바람이 그것을 건드릴 때마다 희끗한 재가 허공으로 부서졌다. 재가 흩날리는 모양은 마치 어제의 시간이 공중에서 풀어져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늬는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뺨을 스쳤다. 어젯밤 별빛 아래서 나누었던 말들이 여전히 귓가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루카, 해변에 가자.」
그녀의 목소리는 새벽 공기만큼 맑았지만, 안쪽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떨림이 묻혀 있었다.
두 사람은 발길을 해안으로 옮겼다.
물결은 여전히 같은 박자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모래사장에는 어제와 다른 무늬가 찍혀 있었다. 루카가 남긴 발자취도, 하늬가 장난 삼아 그려놓은 곡선도 아니었다. 그 발자국은 더 가늘고, 모래 속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앞꿈치는 유난히 움푹 꺼져 있었고, 뒤꿈치는 약간 비스듬히 찍혀 있었다. 마치 걸음을 내딛는 매 순간마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을 잃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하늬가 무릎을 굽혀 발자취를 살폈다. 손끝이 부드러운 모래를 훑을 때, 알갱이 틈에서 은빛 조개 조각이 번쩍였다. 그 작은 빛은 새벽 첫 햇살을 삼킨 듯 선명했다.
「우리 말고도 여길 다녀간 사람이 있네.」
그녀의 목소리는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루카는 발자국의 시작점을 찾기 위해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파도와 바람은 그곳에서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 듯,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대신 발자국은 육지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에 누군가 바다를 등지고 걸어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발걸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겼다. 그 자리에 조개껍질과 해초가 흩어져 있었고, 주변의 모래는 살짝 움푹 파여 있었다. 마치 그곳에서 오래 서서 바다를 바라본 사람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하늬가 조심스레 몸을 낮췄다.
그 순간, 루카의 시야에 모래 속에 반쯤 묻힌 나무 조각이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 오래된 표지판을 잘라낸 듯한 모양이었다. 나무 결 사이에는 희미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지만, 절반은 바람과 물결에 닳아 사라져 있었다.
「이거… 무슨 표시 같아.」
루카는 그것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모양은 금세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기묘한 선들이 얽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모래가 눈가와 볼을 스치며 지나갔고, 발자국 끝자락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지우는 것처럼, 모래가 그 형체를 삼켰다.
「루카, 방금…」
하늬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바람 속에서, 아주 희미한 ‘걸음 소리’가 섞여 들렸기 때문이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멀리 해변의 끝자락,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그림자가 스쳤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바람에 흔들린 풀잎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카는 그 실루엣이 잠시 ‘서 있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림자는 곧 사라졌다.
「저쪽으로 가볼까?」 하늬가 물었다.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발자국이 향하던 쪽에 고정돼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찾아야 한다’는 감각과 ‘만나면 안 된다’는 경계가 서로 뒤엉켰다.
그들이 한 발 더 내딛으려는 순간, 해변 너머에서 또 다른 걸음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웠고, 그 발걸음은 분명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늬의 숨소리가 짧게 끊겼다.
루카는 본능적으로 나무 조각을 주머니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두 사람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파도가 한 번 크게 밀려와 모래를 삼켰다.
모든 발자국이, 심지어 방금 그들이 남긴 발자취마저 순식간에 지워졌다.
남은 것은 축축한 바람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묘한 공기뿐이었다.
루카와 하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눈은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 ‘여기, 대체 누가 있었던 거지?’
멀리서 또 한 번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바람에 실린 서늘한 목소리가 해변을 가로질렀다.
「여긴… 너희가 올 곳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