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

by Helia

인생에는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기어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 내 삶을 방향 지어 왔다. 내가 선택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선택할 여지조차 없던 장면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기도 하고, 나는 오래전부터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불러왔다.

어릴 적엔 그 말이 싫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어떤 일들은 전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붙잡아도 흘러가고, 밀쳐내도 다시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억울했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원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불운의 낙인이 아니라 삶의 구조 그 자체라는 걸.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강물 같아서, 아무리 노를 젓는다 해도 결국 물살이 데려다 놓는 곳에 닿는다. 애써 거슬러 올라가려 해도 어느 순간 다시 휩쓸린다.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어쩔 수 없음은 ‘이별’이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나이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날. 내가 아무리 울고 매달려도 그 손길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진 속 미소만이 남아,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죽음이란 건, 인간이 절대 바꿀 수 없는 완벽한 어쩔 수 없음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흘러 또 다른 형태의 이별도 겪었다. 사랑한다 믿었던 사람이 떠나간다 했을 때, 나는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새 편지를 쓰고, 끝까지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이 떠난 이는 결국 제 갈 길로 걸어갔다. 남겨진 건 텅 빈자리와 부서진 자존심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많다. 계획한 길이 한순간에 막히고,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간절히 원했던 것이 눈앞에서 스르륵 흩어진다. 예전 같으면 주저앉아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무력한 자리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결국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마치 문 하나가 닫히면, 예상치 못한 창문이 열리듯이.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인다는 건 체념과 다르다. 그것은 삶의 흐름을 인정하는 일이다. 억지로 바꾸려 애쓰는 대신, 흐름 속에서 나를 다잡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실패도, 상실도, 거절도 결국 지나가는 강물일 뿐. 언젠가는 다른 풍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나는 실패 앞에서 많이 흔들렸다. 준비한 시험에서 낙방했을 때, 오랫동안 애써온 일이 무너졌을 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질문을 수십 번 던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실패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성공만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부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멈추고 돌아보고 새 길을 내는 법을 배웠다.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겸손’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누군가의 눈물이 단순한 약함이 아니라,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순간을 지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답게 자라난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저항한다. 마음 깊숙이 선 아직도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싸우지는 않는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묻는다. “이건 내가 붙잡아야 할 일일까, 아니면 놓아야 할 일일까.” 그 경계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흘러가는 것들을 조금은 담담하게 바라본다.

어쩔 수 없는 일을 인정하는 건 결코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을 품은 여백이다. 내가 놓은 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꽃이 피어나는 걸 종종 보았다. 끝내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있었지만, 그 대신 전혀 상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왜 나만?”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이번에도 어쩔 수 없구나.”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쩔 수 없음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숨 쉬고, 걷고, 사랑하고, 기록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내 삶을 완성시키는 퍼즐 조각이었다. 그 조각들이 맞춰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감히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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