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그럼에도 나는

by Helia

모든 게 변했는데, 왜 나만 이 자리에 그대로일까.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훌쩍 떠나버린 후, 혹은 달라진 계절 속에서 예전의 내 사진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나는 참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웃는 얼굴이 낯설다.
어느 날은 내 웃음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날은 거울 속 눈동자가 아주 오래전 나를 쳐다보는 듯해 섬뜩하다.
그 아이는 아직 거기 있는데, 나는 벌써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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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은 여전하다.
어릴 땐 별이 예뻐서 봤고,
청춘 땐 누군가 그리워서 봤고,
지금은 그냥,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본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자취조차 희미한 별빛조차도, 내겐 하나의 위안이다.

그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물었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요?”
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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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게 많다.
익숙했던 길은 더 이상 발길이 가지 않고,
사랑했던 취향은 식어버렸다.
몇몇 사람은 영영 떠났고,
몇몇 감정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커피 대신 뜨거운 물을 끓인다.
씻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쳐다본다.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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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자주 헤집는다.
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의외의 장소에서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누군가의 향수 냄새에 울컥,
지나간 노래한 줄에 가슴이 콱 막히고,
이름 모를 꽃을 보다가 한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이런 감정은 문득 찾아온다.
허락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머물다 간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그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시간이 나를, 아직도 붙잡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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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잊고 싶었다.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내 감정조차 나에게 너무 컸던 시절.
그저 조용히, 조그맣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너무 많은 걸 느끼는 사람이었고,
지나치게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지워지지 않으니, 차라리 안고 가기로 했다.
어깨가 무거운 날도 있지만,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걸 부정할 순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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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잣말을 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집 안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좀 괜찮았어?”
“그래도 수고했어.”

이런 말들이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가장 절실했던 위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들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내 편이 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위해 다정해지기 전에
먼저 나에게 다정해지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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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쓰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쓰지 않으면 사라질까 봐.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종이 위에 흘려보낸다.

글이 꼭 멋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이유도 없다.
그저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로 남긴다.
하루치의 감정, 스쳐간 생각, 사소한 깨달음.

글은 내게 거울이고,
때론 무릎을 꿇게 하는 자백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날에는, 나를 살리는 구급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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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여전하다.
상처받은 적 많다.
배신당한 적도 있고,
말 한마디에 며칠을 끙끙 앓은 적도 있다.

그래도 또 사람을 좋아한다.
웃는 얼굴을 보면 같이 웃고 싶고,
힘들다는 말에는 괜히 내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전히 나는, 그런 바보 같은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다.
때론 그 마음 때문에 무너져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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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걷고, 혼자 잠든다.
그런 일상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그 고요 속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있다.
언제든 내 옆에 와도 괜찮을 사람.
내가 내민 손을 놓지 않을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인연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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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서러운 날.
내가 나에게 너무 미안한 날.

그럴 때면
뜨거운 물로 손을 씻는다.
깨끗해진 손으로
조용히 마음을 쓸어내린다.

괜찮아.
이 말 한마디가 전부인 날도 있다.
그 말조차 들리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 하루를 또 버텼고,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려 애쓴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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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묻는다.
“넌 꿈이 뭐야?”
예전 같았으면 긴 설명을 덧붙였겠지만,
지금은 짧게 대답한다.

“나로 사는 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니까.
흔들리지 않고 나로 살아가는 것.
그거 하나만 제대로 해내도,
인생은 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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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아주 자주 무너진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힘들고,
어느 날은 진짜 아무 말도 못 한 채 하루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일어난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다시, 나를 안는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계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떠나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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