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길, 찾은 마음
어둠 너머, 물결 사이로 다가오던 그림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빗방울이 그 털 위를 타고 흘렀고, 골목을 적신 가로등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번졌다. 익숙한 얼굴, 그러나 낯선 기운이 감돌았다.
솔이 숨을 죽였다. “진영…?”
고양이는 잠시 그 이름에 귀를 기울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눈빛은 차분했으나 어딘가 새초롬했다.
“그 이름, 이젠 날 부르지 않아. 나의 새 주인은 날 엘란이라 불러. 그리고… 난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순간, 네 마리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달은 눈동자를 크게 뜨며 한 발 다가섰다. “너, 우리 진영 맞잖아. 섬에서 함께 뛰놀던 그때의 너.”
엘란은 꼬리를 가볍게 흔들며 담담히 대꾸했다. “맞아, 진영이었지. 하지만 그건 오래된 이름이야. 내가 잃어버린 길에서 만난 사람은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고, 난 그 부름 속에서 새로운 마음을 얻었어.”
루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넌… 우리를 잊은 거야?”
엘란은 피식 웃었다. “잊었다면 이렇게 나타나지도 않았겠지. 다만, 나는 선택했을 뿐. 너희가 아직 바다를 좇을 때, 나는 따뜻한 손길을 따라갔어.”
하늬는 노트를 꺼냈지만 손이 떨려 글씨가 번졌다. 비가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으나, 그는 애써 펜을 눌렀다.
‘잃어버린 길에서, 그는 새 이름을 얻었다.’
솔이 목소리를 높였다. “새 이름이 뭐가 중요해! 넌 우리와 같은 섬의 바람을 안고 자란 고양이야. 그걸 지울 수 있어?”
엘란은 시선을 솔에게 고정했다. 눈빛은 도전적이었으나 차갑진 않았다. “섬은 내 안에 여전히 있어. 하지만 그건 과거일 뿐. 지금의 난 도시의 불빛을 걷고, 새로운 주인의 품을 안다. 이름이 바뀌어도, 내가 바뀌었다 해도, 그건 부정할 수 없어.”
달은 발끝을 떨며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와 함께 있던 시간은 뭐였어? 모래사장 위의 발자국, 파도에 흔들리던 웃음은…”
엘란은 고개를 들어 빗속 하늘을 바라봤다. “그건 잃어버린 길이야. 하지만 그 길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너희가 찾은 건 바다일지 모르지만, 내가 찾은 건 마음이야. 이름이 달라져도 내 기억 속 너희는 지워지지 않아.”
네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낯설고도 익숙한 존재, 잃은 줄 알았던 친구가 눈앞에 서 있었으나, 이미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늬는 마지막으로 노트에 적었다.
‘이름은 바뀌어도,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엘란은 그 글귀를 슬쩍 보고 새초롬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게 내가 전하고 싶던 말이야.”
그 순간, 바람이 불어 골목의 빗방울을 몰아냈다. 어둠 속에서도 고양이들의 눈빛은 서로를 비췄다. 길은 달라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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