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달콤함의 잔향

by Helia

사탕 하나로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작은 단맛이 세상의 전부였던 때, 나는 입 안의 달콤함으로 하루를 버텼다.
지금 내 책상 위에도 유리병 하나가 있다.
그 안엔 오래된 추억들이 알록달록하게 굳어 있다.
손을 뻗어 하나를 꺼내면,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이 깨끗한 소리를 낸다.

어릴 적 나는 문방구 유리병 앞에서 늘 같은 고민을 했다.
파란색은 하늘의 맛일까, 빨간색은 여름의 맛일까.
노란색은 햇살, 투명한 건 눈물 같았다.
작은 동전 몇 개로 고른 사탕을 입에 넣고, 천천히 굴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혀끝에서 녹아 사라질 때마다 하루가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슬픔인 줄도 몰랐다.

사탕은 늘 달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달콤함조차 삼키기 어려웠다.
입안에 넣은 채 아무 말도 못 하던 날들이 있었다.
단맛이 눈물에 닿자, 오히려 쓰게 느껴졌다.
그건 어린 마음이 처음 배운 ‘상실’의 맛이었다.

오래전, 엄마는 가끔 장롱 위에서 꺼낸 유리병을 내게 보여주곤 했다.
“이거, 네가 아플 때마다 달라고 하던 거야.”
병 안엔 반쯤 녹아 서로 달라붙은 사탕들이 있었다.
손에 쥐면 끈적였고, 혀끝에 닿으면 달았다.
그때 나는 몰랐다.
엄마의 손끝이 내 입 안보다 더 단 것을.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 문방구 앞에 서지 않아도 손안에 수많은 사탕이 있다.
편의점에서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값싼 기쁨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맛이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다.
혀끝이 아니라 마음이 무뎌진 탓일까.
아니면, 어릴 적처럼 누군가와 나눌 순간이 사라진 탓일까.

사탕은 인내의 음식이다.
천천히 녹여야 비로소 맛을 안다.
조급한 마음으로 깨물면 순간은 달지만, 끝은 짧다.
그래서 사랑이 사탕을 닮았다.
처음엔 달지만, 오래 물면 아프다.
그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단맛을 기다린다.
사랑이 끝나도 입안엔 잔향이 남듯,
사탕이 녹아도 혀끝엔 기억이 남는다.

나는 종종 그 기억을 찾아 입 안에 사탕을 굴린다.
기억은 사탕처럼 동그랗다.
깨지면 조각나고, 녹으면 사라진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인생의 전부였던 것처럼
한 입의 단맛으로 다시 살아난다.

퇴근길, 누군가 내 손에 작은 병을 쥐어줬다.
“오늘 하루, 달콤하게요.”
별 의미 없는 말이었는데,
그 안의 사탕 몇 알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지친 하루 끝, 지하철 의자에 앉아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혼자 조용히 사탕을 굴리며 생각했다.
이게 다 녹기 전에, 오늘도 버틸 수 있겠지.

단맛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또 사탕을 찾는다.
사람도 사탕 같다.
처음엔 반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녹아간다.
누군가는 입 안의 단맛으로,
누군가는 마음속 상처의 자국으로 남는다.
그래도 우린 계속 사탕을 물고 산다.
다시 사랑하고 싶어서,
다시 웃고 싶어서,
다시 오늘을 견디기 위해서.

사탕이 녹아 사라지는 순간,
입안은 텅 비지만 마음은 가득 찬다.
그 짧은 달콤함이 하루의 쓴맛을 잠시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단맛으로 버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손끝의 온기 —
모두 사탕처럼 작고 달다.
사탕은 결국 마음의 비밀 주머니다.
힘든 날엔 그 안에서 하나 꺼내 물면 된다.

가끔 생각한다.
사탕을 너무 일찍 깨물던 내가,
사람을 너무 빨리 믿었던 내가,
조금만 더 기다릴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천천히 녹여야 오래 남는다는 걸
그땐 몰랐다.

사탕은 기다림의 맛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그리워하는 일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녹아든다.
단맛이 사라질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 모든 달콤함이 결국 ‘순간의 축복’이었다는 걸.

창가에 앉아 유리병을 들여다본다.
그 안의 사탕은 햇살에 부서져 무지개처럼 반짝인다.
분홍색은 설렘, 파란색은 평온, 초록색은 안도,
그리고 투명한 건 아직 이름 짓지 못한 감정.
나는 오늘 그중 하나를 꺼내 입에 넣는다.
혀끝에 닿자, 아주 오래전 기억이 다시 피어난다.
그때의 나, 그때의 사람, 그때의 온기.

사탕은 녹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달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
그리워하는 일,
다시 살아보려는 일 —
모두 그 작은 단맛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이 아무리 쓰더라도,
우리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사탕 하나쯤은 남아 있다.
언젠가 다시 꺼내 물면 된다.
그 순간, 달콤함은 다시 우리를 살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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