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빛을 놓아주는 법
지나간 일을 붙잡고 산다는 건, 이미 기울어 사라진 햇빛을 손바닥으로 덥석 끌어당기려는 몸짓과 같다. 따뜻해지지도 않고, 밝아지지도 않고, 손금 사이에 스미는 건 먼지 같은 허무뿐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어쩐지 그 희미한 빛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이미 저문 날의 온기를 되살릴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기억의 바닥을 괜히 더듬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이 밝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내 안의 과거를 깨우는 걸까.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물어도라던 말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늘 더디다. 마음은 이해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뒤를 돌아본다.
지나간 일을 곱씹는다는 건 사실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가 아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혹은 그 순간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아쉬움, 아니면 이미 지나간 날마저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상한 충동에 가깝다. 우리가 기억이라는 문을 열 때마다 들리는 건 오래 묵은 감정의 삐걱 거림이다. 그 문은 결코 부드럽게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에는 지난 선택의 잔열이 남아 있고, 열어젖히면 오래된 추위가 훅 밀려온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시 문을 연다. 마음은 참 이상하다. 몸은 앞으로 걷는데, 생각은 어느 구석에 걸린 실밥처럼 뒤를 끌어당긴다.
지나간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 사람은 동시에 시간을 거스르는 환상 속에 빠진다. ‘그때 내가 왜 그러지 않았을까’,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달라졌을까.’ 이렇게 질문을 덧붙이다 보면 어느새 현재는 그저 희미한 그림자처럼 멀어진다. 과거를 살아내느라 오늘은 텅 빈 껍데기처럼 흘려보내고, 그러다 또 다른 후회를 쌓는다.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후회할 텐데.” 이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결국 진실이다. 지나간 일로 오늘을 허비하면, 오늘이 지나간 뒤 또다시 되풀이되는 후회만 남는다. 인간은 그렇게 제 감정의 반복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지나간 것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시큰거리는 이유는, 그 안에 ‘돌이킬 수 없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은 늘 서늘하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다시 재생한다고 해도, 그 장면이 끝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늘 기댈 곳을 잘못 찾는다. 끝난 일에 기대고, 떠난 감정에 집착하고, 지나간 단어 하나에 다시 마음을 쥐어뜯는다. 지나간 일을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나의 오늘은 더 빠르게 무너져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누군가는 지나간 것을 묻어두라고 했을 것이다. 숨기라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묻어둔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더 이상 그 기억의 손아귀에 붙잡히지 않겠다는, 오늘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기억은 묘하게 생명력이 강하다. 흘려보낸 줄 알았던 장면이 문득 꿈결처럼 나타나 나를 흔들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알게 된다. ‘묻어둔다’는 말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마음속에는 늘 조용히 울리는 여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억은 마치 빛바랜 엽서 같다. 만지면 금세 구겨질 것 같고, 오래 들여다보면 마음이 뜨겁다 못해 저릿해진다. 그런 기억들은 다시 꺼낼 필요가 없다. 엽서는 엽서인 채로 오래된 서랍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엽서를 꺼내 쓸모를 찾으려는 순간, 엽서는 제자리를 잃고 의미를 잃는다. 기억도 그렇다. 지나간 기억은 그저 지나간 채로 오래 머물게 두는 것이 더 아름답다. 덧칠하거나, 바꿔보려 하거나, 억지로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일은 다 헛일이다. 과거는 바뀌지 않지만, 오늘의 나는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사람은 가장 크게 흔들린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과거를 붙잡는 건 내 마음이 아니라 시간이 아닐까? 시간이 미묘한 형태로 나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건 아닐까?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오래전 아픈 기억이 문득 떠오르고, 어느 순간은 사소한 대화 하나가 옛 상처를 춤추듯 깨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시간을 탓한다. ‘아직도 이 기억이 남아 있네’, ‘왜 아직도 아프지?’ 하지만 사실은 시간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내가 그 흔적 위에 아직도 걸터앉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지나간 일’과 ‘지나가야 할 일’ 사이에서 살아간다. 지나간 일을 사랑하듯 붙잡고 있으면, 지나가야 할 오늘은 발걸음을 멈춘다. 어제의 그림자에 마음을 태우면서 오늘을 놓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늘은 오늘만의 결이 있고, 이 순간에만 머무는 빛이 있다. 과거를 끌어안고 있느라 오늘의 빛을 놓친다면, 결국 오늘마저 내일의 지나간 일로 흘러갈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지나간 건 이제 정말로 지나갔다고. 그 시간은 나를 거쳐갔고, 나는 그 시간을 건너왔다고.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지금보다 서툴렀고, 지금보다 여렸고, 지금보다 돌이킬 힘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미워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그 시간 속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사실뿐이다.
지나간 건 물어도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어쩌면 이런 것이다. 과거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더 크게 살아내라는 신호. 지나간 일이 자리하던 마음의 공간을 오늘의 숨결로 채우라는 초대. 미련은 어제를 살게 하고, 용기는 오늘을 살게 한다. 기억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의자를 내어주지 말라는 뜻이다. 기억이 편히 앉아 오늘을 밀어내게 두지 말라는 뜻.
오늘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건 과거의 재생이 아니라, 지금의 맥박이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붙잡는 사람만이 내일의 후회를 덜어낼 수 있다. 지나간 일에 마음을 쓰느라 오늘을 잃지 말 것. 오늘을 잃는 사람은 결국 모든 날을 잃는다.
지나간 건 이제 충분히 지나갔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지나간 나를 붙잡지 말고, 지금 숨 쉬는 나를 더 깊이 껴안을 것.
그게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온기이자, 가장 단단한 자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