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에야 비로소 알아차린 계절
추천 클래식
Erkki-Sven Tüür – “Architectonics V: Points – Lines – Landscapes for String Orchestra”
다시 겨울이 왔다.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더 추울 거라는 말을 곳곳에서 들었다. 바람도 유난히 거세지고, 하늘의 색도 쉽게 어두워졌다. 도시의 골목은 아직 겨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듯 미묘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틈새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어 나를 여러 번 멈춰 세웠다. 누군가는 첫눈이 내렸다고 떠들썩했지만, 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고요히 쌓여 있는 하얀 흔적만 보았을 뿐이다. 늦은 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바람에 실려 스치듯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전에도 했던가?
추우면 기억도 순식간에 얼어붙곤 한다. 따뜻했던 계절에는 금세 떠올랐던 사소한 것들도 겨울이 오면 희미해지고, 이름 하나에도 김이 서린 듯 흐릿해진다. 하지만 이런 변화조차 이제는 받아들인다. 겨울은 원래 그런 계절이니까. 찾아오면 받아들이고, 떠나면 아쉬워하고, 다시 오면 또 적응해야 하는, 그런 순환 속의 계절.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그런 흐름을 닮아 있다.
나는 예전에도 겨울을 이렇게 맞았다. 갑자기 찾아온 바람결에 마음이 움츠러들고,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도 유난히 고립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겨울은 외로움의 결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계절이다. 따뜻한 계절에는 숨길 수 있었던 감정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그 형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매년 겨울을 맞을 때마다 조금 더 솔직해진다. 기쁜 건 더 깊게 느껴지고, 슬픈 건 더 선명해지고, 외로운 건 더 길어지는 듯 보인다. 그런 계절의 힘 앞에서 사람은 괜히 조용해지고, 누군가에게 괜찮은 척하던 마음도 얇게 갈라진다.
올해의 겨울은 특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차갑다는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묘한 서늘함이 공기 사이에 떠 있었다. 그 서늘함이 내 안의 오래된 장면들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미 지나갔다고 믿었던 순간들, 잊었다고 생각했던 말들, 사라졌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눈송이처럼 내려앉아 다시 눈앞에 쌓였다. 나는 그 장면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내가 왜 이 계절만 되면 유난히 조용해졌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겨울은 과거의 그림자를 데려오는 계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잔해들을 조용히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첫눈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겨울다운 시작 같았다. 어떤 계절은 현장에서 눈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계절이 지닌 공기와 냄새, 바람의 결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특히 겨울은 그렇다. 차가운 온도보다 차갑게 굳어가는 마음이 먼저 계절을 알려준다. 손끝이 얼어붙기 전에 마음이 먼저 추위를 알아채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겨울이 오면 구체적인 기억보다 분위기와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살았던 여러 해의 겨울이 한꺼번에 겹쳐지며, 지금의 겨울과 섞여 오래된 장면처럼 스며든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희미함이 전부 슬픈 건 아니다. 잊힌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희미해진다고 의미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기억의 흐림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감정도 있다. 첫눈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고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마음, 외로운 날일수록 스스로에게 따뜻해지고 싶은 작은 의지. 이런 것들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올해의 겨울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기억은 흐려져도, 내가 겨울마다 배우는 감정은 흐려지지 않는다고.
올해 나는 조금 다르게 겨울을 바라보기로 했다. 예년 같았으면 추위 속에서 움츠리고, 바람이 불면 어깨를 높이 올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지나쳤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 앞에 쌓인 계절을 정면에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겨울은 견디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깨닫는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추위는 마음을 얼게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얼음 위에 비치는 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겨울은 나에게 늘 질문을 던진다.
“올해의 너는 누구였어?”
그 질문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따뜻하다. 내가 나를 토닥일 줄 알게 된 만큼, 그 질문은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다시 바라볼 기회를 건네주는 듯했다. 심지어 첫눈을 놓친 것도 괜찮았다. 사람은 모든 순간을 잡아두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모든 순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니까. 내가 보지 못한 눈은 바닥에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중에 내린 눈비는 내가 늦게서야 계절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놓쳤어도 되고, 늦어도 된다. 계절은 늘 다시 돌아오고, 내 마음도 다시 계절을 따라간다.
이 겨울, 나는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기억이 흐릿하면 흐릿한 대로 두고, 추우면 추운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에는 겨울이 오면 이유 없이 쓸쓸해지고, 혼자라는 느낌이 더 짙어지는 것이 괜히 창피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겨울은 원래 그런 감정을 데려오는 계절이라는 것을. 이 계절을 통과한다는 건 그 감정까지 함께 통과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여야 덜 아프다.
나는 올해도 겨울을 받아들인다.
늦게 내린 눈을 받아들이고, 예민해진 마음도 받아들이고, 희미해지는 기억도 받아들인다. 겨울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 아니라, 나를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다.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멈추어야 들리는 속삭임이 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나치던 마음의 조각들이 겨울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겨울을 미워하지 않는다.
겨울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혼자 있는 시간, 조용한 사유의 순간,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다시 느끼는 따뜻함의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는 또 한 해를 살아냈구나. 그러니 이제 천천히 지나가도 괜찮아.”
그 말 한마디면 된다.
겨울이 이렇게 다시 찾아온 이유도, 내가 다시 겨울을 맞이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다시 겨울.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더 추울지 몰라도, 나는 올해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이 계절을 견딜 이유는 충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