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묘 Feb 07. 2019

아주 특별한 아포가토

[Food Essay] 커피, 아포가토(Affogato)

@post_eat_story 아주 특별한 아포가토

촌스러운 나도 퍽 세련되어졌다. 커피가 세련의 기준은 아니겠지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첫 장면은 바쁘게 움직이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앤드리아(앤 헤서웨이)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위해 아침에 사 오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졸린 눈을 비비며 나도 한 손에 누구나 다 아는 로고가 박힌 컵 하나를 들고 뭐라도 된냥 서울거리를 활보하는 서울러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앤드리아(앤 헤서웨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엄마가 타 마시던 동서 맥심 믹스커피 한 모금 얻어먹었던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는 이상한 속설을 들이밀며 허락했던 딱 한 모금. 맛있었다기보다 허락된 한 모금이 아쉬워 씁씁함보다 달콤함으로 기억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에 최소 한 잔 이상 습관적으로 커피를 들이키며 역시 카페인이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 치켜세우는 커피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때때로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의 커피를 찾아 홀짝거리며 바디감이 어쩌고, 산미가 어쩌고 허세를 떨기도 한다. 커피맛도 잘 모르면서.

커피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아포가토를 보면 떠오를 한 사람과 뿌듯한 기억에 저절로 미소가 생긴다. 평소 멘토님이라고 외치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생 선배님이 찍어 SNS에 공유한 아포가토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분과 나 사이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아포가도(Affogato)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Espresso)를 얹어 먹는 디저트
이탈리아어로 '빠지다' '익사하다'라는 뜻
2019.01.08 최소현대표님 Facebook 사진
아주 특별한 아포가토;
12년쯤 전, 아주 똘망했던 기획 인턴을 프로젝트 미팅에서 만났다. 당시에 막 졸업한 아가였는데 벌써 30대 중반이라니... 여전히 똘망똘망하고 이쁜 친구가 사 준, 그래서 더 맛있었던 아포가토.


커피 한 잔 나누며 꽤 오래된 추억을 나눴다. 대학교 졸업하고 대표님 회사에서 짧게 인턴생활을 했다. 면접 때 내게 했던 물음과 답, 회사 10주년 파티에 내가 들고 갔던 작은 화분도 기억하셨고, 언젠가 지금 회사 1층에서 뵙고 반가워서 소리치고 껴안은 적이 있는데 그 주 주간 미팅 때 동료들과 내 이야기도 나누셨었단다. 짝사랑인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달콤한 아포가토 한 잔 할 때면 행복했던 그 날의 그 순간이 떠오를 것 같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멘토님에게 대접한 소소한 그러나 아주 특별한 아포가토 한 잔의 추억.

매거진의 이전글 키묘야 미안, 사과할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