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왕궁 구경

06. “무서워. 꿈에 나오면 어떡해?”

by 게으른 기록자

우붓 왕궁에서 한다는 전통 춤* 공연을 보기 위해 느지막이 나섰다.


“정말 왕이 살아?”

“그럼 나도 왕 볼 수 있어?”


들뜬 마음으로 출발한 아이는 금방 지쳐버렸다. 해가 졌는데도 날은 뜨겁고, 길은 비좁고, 사람은 많았다.


한 전통의상을 입은 아저씨가 다가와 목에 걸고 있는 패스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공인된 판매원이라며 표를 사라고 했다. 그 말을 100% 신뢰할 수도 없거니와, 아이 컨디션에 따라 공연 관람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어 사지 않았다. 사정을 말했음에도 그는 공연을 보려면 지금 들어가서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랑 여행 중이라면 기껏 미리 좋은 자리를 맡았다가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나오게 될 가능성까지...생각해야 한다. 그냥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왕궁 근방에는 군것질할 만한 곳이 딱히 없었다. 시장 구경을 좀 해볼까 했으나, 여느 (야)시장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물건들과 사람들로 가득하여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망고스틴이 보이길래 좀(이라기엔 1kg이나...) 사고, 아이스크림 한 컵을 겨우 사 먹고 왕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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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간이 다 되어 왕궁 앞에서 티켓을 샀다. 가격은 아까 아저씨가 제시했던 금액과 같았고(의심해서 미안해요), 안으로 들어서니 정말 자리가 없었다. 무대 측면에서 빈 의자를 가까스로 찾아 자리를 잡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 연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어 등장한 배우들은 반복적이면서도 불규칙한 음악에 맞추어 역시 처음 보는 스타일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목을 한껏 휘감고 손가락 하나하나에까지 힘을 주어, 특히 중지와 약지를 파르르 떠는 동작이 많은, 빠르고 반복적인 춤이었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살짝 기괴하게 느껴졌다.


“무서워. 꿈에 나오면 어떡해?”


아이는 조금 보더니 울먹였다. 덥고, 자리는 하나뿐이라 내 다리 위에 일으켜 세워서 혹은 안아서 보는데 휴대용 선풍기로는 땀이 식지 않고... 결국 아이가 중간에 나가고 싶다고 하여 남편이 데리고 먼저 나갔다.


남겨진 나도 더 이상 흥이 나지는 않지만,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서 열심히 집중을 해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다고. 부랴부랴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는데,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차가 너무 많아서 길을 건너가기가 힘들었다. 애가 탔다.


가까스로 만난 아이는 지쳐서 축 처져있고, 남편도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일단 아이를 안아 들고, 어디 앉아서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주변을 살피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자며 삼겹살집으로 가자고 했고... 그렇게 뜻밖에 한식을 먹게 되었다.


흥미로울 만큼 기괴했던 춤의 기원이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후로도 비슷한, 묘하게 중독적인 그 음악이 들리면 우리 가족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발리 전통 춤을 추억한다.




*이름은 '레공 댄스(Legong Dance)'라고 합니다. 참고 영상: 인도네시아 발리 레공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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