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네 살의 발리 머리 땋기

18. 그래 니 맘대로 한 번 땋아 보거라

by 게으른 기록자

다른 아이들의 땋은 머리를 보고 멋지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관리도 어려운 머리를 용케 하게 했네…’ 하며 양육자를 향한 일말의 존경심이 있었을 뿐. 화려한 스타일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도 ‘저 언니들 머리 예쁘다’ 말만 할 뿐,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발리 세 번째 집’에 도착한 첫날, 수영장에서 머리를 땋아주시는 분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나도 하고 싶어.”


그 한 마디(사실 여러 번 반복된)에 또 급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첫날은 시간이 없어 못 하고, 둘째 날엔 예약이 꽉 차서 못 하고, 마지막 날에야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약 시간에 맞추어 풀장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스타일과 실 색을 고른 뒤부터는 그저 인내심만이 필요했다. 실을 보여줄 때는 결이 고운 완제품을 보여주더니 막상 할 때가 되니 노끈같이 생긴 플라스틱 섬유를 풀어서 땋아주는 걸 보고 살짝 실망했다. 그리고 그 실 끝에 비즈를 달고 라이터로 살짝 녹여 고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그것을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걸 아이한테 하게 해도 되나…? 하지만 이미 아이의 머리는 한 가닥, 두 가닥 땋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시간이 부족하여 짐 싸기 마무리와 체크아웃은 남편에게 맡겨놓고 헐레벌떡 뛰어온 터라,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깐 로비로 향했다. 2박 3일 동안 돈 쓴 내역을 확인하고, 디파쳐 라운지 키도 받아야 했다. 혼자 있는 아이가 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했다. 자꾸만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체크아웃을 마무리하고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더니 아이는 땡볕 아래 의자에 앉아서 졸음, 그리고 지루함과 싸우고 있었다. 한 명이었던 머리 땋아주시는 분이 둘이 되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오래 앉아 있기 버거워하던 아이도 막상 머리를 보여주자 신나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이 지나 드디어 완성! 아주머니에게 지폐 다섯 장을 건네고 발리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보랏빛이 감도는 머리를 아이는 마음에 들어 했다. 고개를 이쪽저쪽 흔들 때마다 비즈끼리 부딪히며 촤르르 소리가 났다. 하지만… 너무 무겁고 더워 보였다.


사실 나는 아이가 했으면 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었다. 관리도 편해 보이고, 맞춰서 코디하기도 쉬워 보였다. 그렇지만 아이가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고 하니 존중해 주려 정말 노력했다. 이럴 때마다 내적 갈등이 생긴다. 살살 내가 원하는 쪽으로 몰아갈 것인지, 말 것인지 말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타협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아이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지 머리 스타일일지라도.


레게머리_250816.jpg


화려한 머리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한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귀국 바로 다음 날이 어린이집 체험학습 날이었다. 인파로 가득한 남산에서 아이는 주변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고 한다. 아이와 놀이터를 가도, 길을 거닐어도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궁금해했다. ‘어머, 저걸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받았대’ 하며 놀라워하는 분도 있고, 어디서 했냐고 묻는 분도 많았다.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자꾸 머리를 만지는 통에 좀 성가셨다고 한다. 다소 도전적으로 그 머리가 진짜인지 아닌지 따져 묻는 동네 아이에게는 도리어 내가 ‘무엇이 진짜냐’고 묻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해석하자면 너무 거창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 다양성이 부족하구나, 싶었다.


하긴, 나부터도 아이와 같은 반 친구가 그런 ‘멋진 머리’를 하고 온다면 아주 쉽고 편하게 대화의 주제로 삼았을 것 같다. 어디서 했는지, 얼마나 줬는지, 얼마나 걸렸는지, 아이가 힘들어하지는 않았는지 물었을 것 같다. 하지만 주목받고 싶어 하면서도 낯을 가리는 아이, 그리고 나는 이런 상황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런 머리를 하려면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본인이 만족했으면 됐지 뭐. 나중에 머리 푸는 데도 한바탕 난리였기에 우리 가족에게 나름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는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머리를 땋겠다고 할지 어떨지 궁금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