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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Aug 30. 2017

선물

마음을 쓰다

모든 사람은 선물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왠지 받는 사람만 자꾸 받고, 주는 사람은 자꾸 주기만 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이제는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하지만 더 좋은 건, 상대가 갖고 싶어 할 만한 것을 찾아내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것. 뜻밖의 선물에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한껏 풍요로워져서, 평소 나를 위해서는 사지 않던 물건들을 잔뜩 신이 난 채로 들여다보고는 한다.


Photo by Mira Bozhko on Unsplash


그런 내게도 선물이라는 행위가 곤욕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건강 상의 이유로 한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 상대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신문물(?)을 접하지 못해 '갖고 싶어 할 만한 것(=주고 싶은 것)'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선물하는 게 일처럼 느껴지고, 즐겁지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 슬펐다.


친한 친구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외출을 감행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제출일까지 질질 끌다 겨우 끝마친 숙제를 내는 심정으로 선물과 카드를 건넸다. '갖고 싶어 하는 것', '갖고 싶어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해 결국 내가 고른 건 '필요할 만한 것'이었다. 몸과 맘이 튼튼하지 않을 땐 마음 씀 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기쁘지만은 않다는 걸 당시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런 나의 고충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친구도 마침 필요했다며, 센스 있는 선물이라며 기뻐해 주었다. 


무사히 숙제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역시 고민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받는 쪽이었던 친구야 말로 내게 마음을 써줬던 게 아닐까 하고.


"생일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만나기 힘든 친구도 볼 수 있다는 것♥"




타이틀 이미지 Photo by Morgan Sessio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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