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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Nov 27. 2019

네, 저 운동해요.
근데 다이어트는 안 해요.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무슨 다이어트야. 그냥 생긴 대로 살아."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지. 

 나는 운동을 한다고 했을 뿐인데. 

 (이 친구와는 웬만하면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좀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왜? 살 빼려고?" 

"다이어트하는 거야?"

"어쩐지 살이 좀 빠진 것 같더라."

"휴, 나도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이상하다. 나는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는데. 


 운동을 하러 헬스나 필라테스라도 등록하려고 하면 그곳에서는 또 이런다. 

"살 빼시려고 하시는 거죠?" 


 이제는 "운동을 하는구나!" "그래, 건강 생각해야지."라고 반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일 정도다. 세상에 이런 귀인이 없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살려고. 살기 위해서.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하나씩 쌓여 이제는 조금 더 건강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다이어트는 나의 운동 생활에 단 1%도 들어가 있지 않다. 운동을 하다 보면 살이 빠질 수도 있고 근육이 붙을 수도 있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나는 마르고 멋진 몸매를 갖고자 운동하는 게 아니라, 기초체력향상과 건강증진을 위해 운동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도 충분히 먹으며, 먹는 걸로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운동하고 있다. 


 아무튼, 지난 몇 달간 그런 힘 빠지는 대화를 반복하다 보니 이 사회가 '운동'에 대한 인식이 옹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목적은 오직 살 빼는 것이고, 운동 좀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은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만들려 운동한다. 운동을 하는 이유가 단지 보여지는 몸매에만 있다. SNS에 올리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도 생겼다. 

 건강하기 위해 운동하는 나 같은 사람은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 너는 그렇게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천년만년 살아라'라는 덕담 아닌 덕담도 받아보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렇게나 운동하기 불편한 사회 분위기라니. 


 얼마 전 한 기사를 접하고 무척 놀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운동을 안 한다고 한다. 청소년의 경우 하루 한 시간 정도는 운동을 해야 심장, 폐, 뼈, 근육 등이 성장하고 발육하는데, 실제로 그 정도의 운동량을 채우는 우리나라 청소년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통계이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선수나 농구선수를 꿈꾸며 운동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모든 청소년이 하루 1시간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로벌경제신문 11월 22일 자 기사 중

 

 운동하지 않는 청소년이 자라 운동하지 않는 성인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습관이 들지 못해서 몸이 뻐근한 채로 그냥 살아간다. 몸은 아무런 에너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에너지를 쓸 일은 너무도 많다.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술을 먹고, 피곤하니 또 술을 먹고, 주말이면 늦잠을 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쩌다 마사지라도 받으면 몸을 위해 큰 일 한 것처럼 간주한 채 말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연히 몸에는 체지방, 내장지방이 쌓이고, 몸이 쉽게 아프다. 그 때라도 운동을 시작하면 다행인데, 운동은 안 하고 대신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다.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운동하세요'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약 처방만 처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운동하세요'도 처방인데.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운동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안 그래도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자신과의 싸움인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운동의 문턱이 더더욱 높아진다. 운동을 하는 것이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내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다 보니 시작하기 매우 어렵다. 

 운동을 하나의 버킷리스트처럼 생각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예전에 뉴욕에 살 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맨해튼은 항상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도로는 노란 택시와 버스들이 쉼 없이 다녔고, 사람들은 늘 전화를 하며 급히 어딘가를 갔다. 이 바쁜 맨해튼의 한복판에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있다. 이 공원은 맨해튼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만큼 생각보다 굉장히 큰 공원인데,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센트럴파크의 장면이었다. 

 맨해튼은 늘 정신없이 돌아갔는데, 그 와중에 센트럴파크에는 항상 조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대충 달리는 게 아니고 운동복을 갖춰 입고, 물병 하나를 손에 들고 달리는 사람들. 오전 8시든, 오후 2시든, 저녁 6시든 그곳에는 항상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혼자 달리는 사람도 있었고, 강아지와 함께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그곳을 내달렸다. 


 현지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자기들의 학교에서는 운동 잘하고 힘이 센 친구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미식축구 선수나 치어리더처럼 몸을 움직이는 게 월등한 친구들 말이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친구를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곱상하게 생긴 친구들이 인기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덩달아 조금씩 운동하다 보니 운동하는 습관이 생긴 모양이었다. 

 운동하는 청소년이 자라 운동하는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들은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만들어 달렸다. 그곳에서는 유모차의 모양도 아이의 엄마가 달리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운동은 그냥 생활 속의 일부분이어야 한다. 스스로 몸이 찌뿌둥한 것을 느끼고, 혹은 체력이 약해진 것을 느끼며 운동해야 한다. 남의 시선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 사회도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을 별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과의 싸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운동의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운동을 해도 살이 안 빠질 수 있다. 어떤 헬스 트레이너는 "운동을 하면서 식이조절을 하지 않으면 건강한 돼지가 될 뿐이다"라고 하지만 중요한 건 '돼지'가 되는 게 아니라 '건강'한 게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즐겁게 살면서 충분한 운동을 통해 몸의 에너지를 만들어가다 보면 몸은 나름의 균형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우리 몸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이 '균형'은 이 사회가 칭송하는 멋진 몸매와는 그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살이 안 빠졌다고 해서 '운동 열심히 안 했네'라고 제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몸매'가 운동의 기준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참을 열변을 토하고 헤어질 때쯤, 그 친구(개뿔, 친구는 무슨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 운동 열심히 하고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만날 땐 살 더 빠진 모습으로 보는 거야?" 


 나를 속상하게 하는 사람,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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