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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05. 2024

한 잔의 커피를 위해


 가끔 범상치 않은 손님이 오실 때가 있습니다. 메뉴판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블렌딩 커피는 어떤 커피인지, 요즘 추천하는 커피는 어떤 커피인지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제가 있는 바(bar)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 머신을 비롯한 장비를 한번 훑어보시고,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드는 과정을 눈여겨보십니다. 커피가 나오면 완벽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커피 향을 음미하고 커피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과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손님도 있지만, 이쯤 되면 제가 먼저 조심스럽게 여쭤보기도 합니다. "혹시 커피 하세요?"






 '커피하다'는 말은 일반적으로는 참 어색한 말입니다. 굳이 풀이하자면 '커피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되겠습니다만, 커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커피하다'는 말로 통용되곤 합니다. 


 카페쇼, 커피엑스포 등 박람회가 한 번씩 열리면 커피를 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커피를 하다가 서로 만나 커피 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커피 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때 느껴지는 공통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상냥하고 즐겁고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네, 커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입니다.


 커피에 관련된 일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흔하게는 카페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바리스타'가 대표적입니다. '직원'으로 일하는 바리스타도 있고, 바리스타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리스타이면서 커피를 볶는 '로스터'도 있고, 커피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도, '센서리'도 있습니다. '커피교육 강사'도 있고 '카페 컨설턴트'도 있습니다. 커피 머신 장비를 다루는 '엔지니어'도 있고, 커피 생두를 수입하고 유통해 판매하는 '트레이더'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커피 원산지에서 커피 열매를 키우고 재배하는 '농부'도 있지요.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위해 이렇게나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커피 믹스로 편하게 먹기도 하고, 집 앞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싼 값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먹기도 하는 세상에서 커피 한 잔이 대체 뭐길래 그러나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원래, 커피는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입니다. 커피체리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커피는 일종의 과일인 셈입니다. 사과의 경우 어떤 지역에서 나느냐에 따라 사과맛이 달라지지요. 커피도 어디서 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포도도 청포도, 거봉, 블랙사파이어, 샤인머스캣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커피도 정말 다양한 품종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커피 열매를 잘 수확해서 '가공'합니다. 가공하는 방식 또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있는 그대로 건조하는 내추럴(natural) 방식과 세척해서 건조하는 워시드(washed) 방식이 대표적이지요. 그 외에도 허니, 무산소 등 정말 여러 방법들이 있습니다. 


 가공 후의 커피는 노르스름한 연두빛의 커피 생두가 되는데, 이걸 이제 볶아내야 합니다. '로스팅(roasting)'이라고 하지요. 로스팅은 커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덜 익지 않게, 그러나 타지 않게, 그러면서도 풍미가 제대로 드러나도록 적절하게 로스팅하려면 불과 시간을 잘 조절하면서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합니다. 


 까무잡잡해진 원두가 드디어 한 잔의 커피로 나오도록 '추출'하는 게 바리스타의 일입니다. 추출도구에 맞게 적절한 입자로 원두를 분쇄(grinding)하고 적당한 양의 물로 커피를 추출해 냅니다.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추출한 커피이고, 핸드드립 도구에 물을 부어 커피를 추출하면 드립커피가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또 달라지지요. 정말이지, 커피 한 잔의 세계는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커피 열매를 수확하고, 가공하고, 로스팅하고, 추출하면 그제야 한 잔의 커피가 나오는 겁니다.



 이 복잡한 일련의 과정은 각각 너무나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또 섬세한 작업을 요합니다. 심지어 모두 각각의 대회가 있습니다. 좋은 생두를 가리는 대회, 로스팅 대회, 바리스타 대회, 라떼아트 대회 등. 커피하는 많은 분들이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커피를 내어놓고 심사를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많은 심사위원들이 커피를 맛보고 점수를 매기며 좋은 커피를 세상에 알립니다. 


 저희도 여러 커피 대회에 참가하며 저희의 커피를 알리고 다른 커피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수년간 이 세계에서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위해 고민하고 수고하며 느낀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대회에서 수상하고 상금과 명예와 유명세를 얻는 목적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 그러니까, 어떻게든 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만들어내기 위한 '커피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정성껏 맛있게 내놓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기까지 수많은 테스트를 거칩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봅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물어보고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합니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애정을 쏟습니다. 그 과정이 우리의 자랑이고, 경쟁력입니다. 네, 커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은 '맛있는 커피'를 위한 여정입니다. 누구나 먹는 커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한 여정인 것입니다.



 저희도 로스팅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박람회에도 다녀오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커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 묻혀 시간을 보냅니다. 축하받기도 하고 또 축하해주기도 했습니다. 각자 커피하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또 느끼지만, 커피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상냥하고 즐겁고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맛있는 커피'라는 목표가 같고, 열정적이고, 노력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이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열심히 한 것처럼 그들도 열심히 해왔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동시에, 모두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저희는 커피를 볶고, 커피를 내립니다. 

 네, 저희 커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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